문재인 대통령은 1일 뉴질랜드 방문에 앞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내에서 많은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믿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절제된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문 대통령이 ‘믿어달라’는 비장한 표현을 사용한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청와대 직원들의 잇따른 일탈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자 문 대통령이 귀국 후 청와대 조기 개편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 글에서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경호처 직원의 민간인 폭행, 의전비서관 음주운전,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직원 비위 등이 잇따라 발생한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적폐청산을 내세운 문 대통령이 정작 청와대 내부에서 도덕성 문제가 발생하자 청와대 조직 개편 등 비상한 각오를 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굉장한 위기감을 느낀다”며 “국민이 느끼는 감정을 청와대도 알고 있지 않겠냐”고 했다.
청와대 공직기강을 책임지는 조국 민정수석의 거취도 관심 대상이다. 조 수석은 앞서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실패, 공개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 등으로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자신이 관리하던 조직의 비위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이전 논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평가다. 검찰 수사관 출신 특감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 특정 사업자를 소개하며 ‘잘 봐 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했다는 추가 의혹도 나왔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말 한마디도 조심하는 게 청와대 분위기였는데 적폐청산을 담당하던 특별감찰반이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조 수석의 대응 방식도 문제로 꼽힌다. 사정기관을 책임지는 조 수석이 소속 특감반 직원 비위의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한 채 “검찰과 경찰에서 신속 정확하게 조사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입장만 밝혀 야당으로부터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감반 전원 교체를 두고도 “업무 공백을 생각하지 않은 조치”라는 우려가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조 수석뿐 아니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경질까지 요구하고 있다.
여권에서도 조 수석이 불필요하게 일을 키워 정치공방의 소재만 제공했다는 불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제 민정수석이 책임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며 “먼저 사의를 표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드리는 게 올바른 처신”이라고 썼다.
다만 청와대는 “아직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청와대 개편 등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도 이날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내 현안과 관련한 질문들에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문 대통령은 ‘국내에 관심사가 큰 사안이 벌어져 질문을 안 드릴 수 없다’는 기자의 말에 “짧게라도 질문 받지 않고 답하지 않겠다”고 잘랐다. 외교 이슈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라지만, 청와대 내부의 흐트러진 공직기강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낸 대목으로도 읽힌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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