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휴전, 트럼프ㆍ시진핑 뭘 주고 받았나
1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휴전’ 합의 소식은 그 핵심이 ‘대중 추가관세 90일간 보류’라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확전 자제를 위한 미국의 양보’로 볼 여지가 있다. 중국을 겨냥한 그 동안의 압박 일변도 정책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3개월 휴전의 대가로 미국이 챙긴 ‘실리’가 적지 않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 동안 정치적 관점에서 매우 민감하게 여기던 사안들과 관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큰 양보를 내놓았다. 때문에 손익계산을 따진다면 ‘중국이 더 많이 양보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펜타닐(fentanyl)’ 규제 문제다. 백악관은 이날 발표한 관련 성명에서 이 부분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매우 중요하게도 시 주석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펜타닐을 규제 약물로 지정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에 펜타닐을 판매하는 사람은 중국에서 법정 최대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30~50배 약효를 가진 강력한 진통ㆍ마취제다. 2014년 합성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미국인 5,500여명 가운데 대부분이 펜타닐과 관련됐고, 미국은 중국을 펜타닌의 주요 공급원으로 지목해 왔다. 결벽성이 느껴질 정도로 약물 중독을 증오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트위터에서 “펜타닐이 우편을 통해 중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온다”고 밝히면서 중국에 화살을 겨눈 바 있다. ‘관세ㆍ무역 전쟁’의 맥락은 아니지만, 미국의 사회 문제 해결에서 의미 있는 약속을 받아낸 셈이다.
중국 당국의 제동으로 무산된 미국 모바일폰 칩 메이커 퀄컴의 ‘NXP 인수’ 작업도 회생의 길이 열렸다. 네덜란드 업체인 NXP 반도체 인수 계약을 추진하던 퀄컴은 관련 승인이 필요한 9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이 지난 7월 ‘불허’ 방침을 밝히면서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시 주석이 이날 “퀄컴-NXP 계약에 대한 승인 여부를 ‘개방적 자세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다시 바뀌게 됐다. 백악관도 이날 성명에서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북한 핵 문제에서도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 잠재적으로 큰 선물을 안겼다.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는 시 주석의 인정과 다짐을 이끌어낸 것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고무적인 상황 변화다. 시 주석은 올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세 차례 만남을 통해 대미 협상에서 중국이 북한의 지렛대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그 약속의 의미가 크게 퇴색됐다는 평가다.
한편 이날 오후 5시47분(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팔라시오 두아우파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업무 만찬은 당초 예정보다 긴 2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스테이크와 현지 와인 등 식사가 나오기 전, 두 정상이 “우리의 관계는 매우 특별하다”(트럼프 대통령), “우리 사이의 협력만이 세계 평화와 번영을 도모할 수 있다”(시 주석)는 우호적인 인사말을 나눌 때부터 ‘휴전 합의’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게 외신의 평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중 온건파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정책국장이 함께 배석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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