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잉글랜드 챔피언십(1부) 소속이지만 과거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었던 클럽 위건 애슬레틱의 별명은 ‘생존왕’이었다. 위건은 EPL의 전형적인 중하위권 팀이면서도 2005~06시즌부터 8시즌 연속 1부에서 살아남았다.
한국 프로축구에서 위건과 자주 비교되는 팀이 시민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다. 인천은 1일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 K리그1(1부) 마지막 경기에서 3-1로 이겨 9위로 또 한 번 극적인 잔류 드라마를 썼다. 인천은 2017년 연봉 총액이 약 35억원으로 12팀 중 광주FC(31억 원) 다음으로 낮았다. 2013년 승강제 실시 후 잔류를 위해 매년 살얼음판 경쟁을 해야 했고, 3시즌 연속 리그 최종전에서 잔류를 확정했다.
2016년에는 수원FC에 1-0, 작년은 상주 상무에 2-0, 올해 전남에 승리하며 잔류했다. 특히 올해는 스플릿라운드(시즌 막판 상하위 그룹으로 나누는 방식) 마지막 5경기에서 4승을 챙기는 강한 ‘뒷심’을 발휘했다.
인천-전남의 경기는 양 팀 합쳐 33개의 슛(인천13 전남20)과 20개의 유효 슛(각 10)이 나올 정도로 박진감 넘쳤다. 잔류를 노리는 인천은 물론 강등이 확정된 전남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나왔다.

인천이 남준재의 환상적인 발리 슛, 무고사의 페널티킥으로 앞서가자 전남은 허용준의 깔끔한 마무리로 추격했다. 후반 10분 러시아 월드컵이 낳은 스타 인천 문선민이 해결사로 나섰다. 그는 역습 상황에서 빠른 스피드로 수비수를 제치고 골키퍼까지 넘기는 감각적인 오른발 슛을 터뜨린 뒤 흥겨운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날 경기를 본 팬들은 ‘오늘처럼만 경기하면 EPL 대신 K리그 보러 올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천은 2016년 잔류 확정 후 감격에 찬 관중들이 한꺼번에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오는 소동을 빚은 적이 있다. 이른바 ‘유쾌한 관중 난입’으로 큰 화제를 모았지만 엄연히 규정 위반(관중의 소요 난동)이라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구단은 올해 전남과 최종전을 앞두고 ‘그라운드 난입 금지’를 당부했고 경기장을 찾은 9,123명의 홈 팬들은 침착하게 잔류의 기쁨을 만끽했다.


인천 사령탑인 예른 안데르센(55ㆍ노르웨이)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 최초 외국인 득점왕(1989~90) 출신의 스타플레이어다. 올해 4월까지 북한대표팀을 맡았던 그는 지난 6월 인천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초기 선수 파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하며 잔류를 이끌었다.
안데르센 감독은 잔칫날에도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인천이 살아남아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왜 매년 강등 싸움을 벌어야 하는지 슬프다. 인천 구성원들이 서로를 좀 더 존중해야 한다. 특히 스카우트 파트가 코칭스태프와 감독이 배제된 선수 계약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감독과 상의 없이 몇몇 선수를 영입해 팀 내 불화가 있다는 소문이 일부 사실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안데르센 감독은 “더 좋은 팀이 되기 위해 관계자들도 프로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인천과 내년까지 계약돼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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