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위 간부가 승진 탈락의 불공정성을 거론하며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초유의 인사 항명 파동으로 경찰 내부가 뒤숭숭하다. 그가 승진 탈락 배경으로 과거 정권의 적폐 사건으로 지목된 백남기씨 사망사건 관련성을 꼽으면서 적폐 청산의 기계적 적용이 야기한 인사 반발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향후 경무관 이하 승진 인사에서 잡음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9일 단행된 치안감 승진인사에서 탈락, 정부의 경찰 고위직 인사를 비판하며 명예퇴직을 신청한 송무빈(55) 서울경찰청 경비부장(경무관)은 30일 본보 통화에서 “(백 농민이 사망하게 된) 2015년 민중총궐기 이후 총 6차례 치안감 승진에 도전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며 “당시 서울청 기동본부장으로 집회 현장에 있었지만 제가 관리한 구역은 태평로 일대로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종로구청 사거리와는 다르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이어 “인사철마다 경쟁자들이 청와대나 정부 고위인사에게 백남기씨 사망사고가 있었던 민중총궐기대회 현장을 관리한 제 이력을 문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인사 불이익이 반복돼 민갑룡 경찰청장 취임 직후인 올 7월 ‘백남기씨 사망사건을 제가 책임지는 것은 가혹하다’는 내용의 이메일까지 보냈을 정도”라고 말했다.
송 부장은 이번 인사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간 인사 불이익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도 같은 취지로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경비통인 그는 탄핵 촛불집회 관리 등 성과를 인정 받아 2014년 경무관 승진 이후 4년 연속 치안성과 평가 최우수 등급을 받았으나 백남기씨 사망사건 등으로 인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승진이 배제됐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 의견은 엇갈린다. 한 경찰 관계자는 “치안감은 경찰 내에서 약 0.02%(11만8,000명 중 27명)에 해당하는 고위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작은 실수나 오점, 평판도 인사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백남기씨 유족 반발이나 잡음 등을 고려해 (송 부장 승진에 대해) 청와대나 윗선에서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경찰 인사는 다른 조직보다 출신 지역, 입직 경로 안배에 더 신경을 쓴다”며 “이번 인사에서도 송 부장과 출신 지역(충북)이나 입직 경로(경찰대)가 겹치는 인사가 있어 고배를 마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 항명 파동이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현정부 출범 이후 적폐청산 차원에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외부 전문가 위주)가 출범, 백남기씨가 사망한 민중총궐기와 2009년 쌍용차 파업 진압 당시 국가(경찰)가 주최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하라는 권고를 내리자 경찰 일각에선 “집회 시위에 소극 대응하는 게 상책”이라는 불만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승진 탈락 요인이 집회 사고에 있었던 걸로 부각되면서 지휘관들이 집회 현장에서 아무도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인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정부의 과도한 적폐몰이로 곪을 대로 곪은 경찰 내부 문제가 터졌다”며 송 부장의 승진 탈락을 문제 삼았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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