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밑바닥 축구, 좌절 모르니 날더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밑바닥 축구, 좌절 모르니 날더라”

입력
2018.12.01 04:40
24면
0 0
국가대표 수비수 이용이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며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올해 소속 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전북 현대 제공
국가대표 수비수 이용이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며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올해 소속 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전북 현대 제공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는 “축구는 대기만성 스포츠”라고 자주 말한다.

이승우(20ㆍ베로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보이는 선수도 있지만 프로에 가서 열심히 해 뒤늦게 기량을 꽃 피우는 선수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국가대표 오른쪽 수비수 이용(32ㆍ전북 현대)도 ‘늦깎이 스타‘다.

그는 청소년, 올림픽 대표에 한 번도 뽑힌 적이 없다. 2009년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3경기를 뛴 게 전부다. 성인 국가대표에도 스물일곱 살인 2013년에 처음 발탁됐다. 당시 국가대표 사령탑이 홍 전무였다.

이용은 만 서른둘이 된 2018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뛰며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독일전 승리에 힘을 보탰다. 당시 토니 크로스(28ㆍ레알 마드리드)의 킥을 온 몸으로 막다가 사타구니 부근에 공을 맞고 쓰러져 유명세도 탔다. 이용은 러시아 월드컵 후 더 성장했다. 공수를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에 ‘택배 크로스’까지 장착해 파울루 벤투(49ㆍ포르투갈) 국가대표 신임 감독 눈에 쏙 들었다. 벤투 감독 부임 후 치른 A매치 6경기를 모두 선발로 뛰며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이용은 정확한 크로스를 자랑한다. 팬들은 ‘택배크로스’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용은 정확한 크로스를 자랑한다. 팬들은 ‘택배크로스’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프로축구 활약도 눈부시다.

이용은 올 시즌 전북 조기 우승의 일등 공신이다. 수비수인데도 도움 9개로 3위에 올랐고 라운드 베스트11에 13번이나 선정됐다. 이용은 외국인 스트라이커인 경남FC 말컹(24ㆍ26골), 강원FC 제리치(26ㆍ24골), 주니오(30ㆍ21골)와 함께 K리그1(1부) 최우수선수(MVP)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용이 수상하면 1992년 홍명보, 1997년 김주성 이후 21년 만에 수비수 MVP가 탄생한다.

그는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이)동국이 형이나 신욱이 등 팀 동료들은 무조건 내가 받을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프로에 와서 MVP를 받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겸손해했다.

이용은 작년에 진지하게 은퇴를 고민했다.

2016년 11월과 지난해 9월, 두 번이나 탈장 수술을 했는데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축구 인생이 정말 끝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다행스럽게 지난해 11월 세 번째 수술 후 통증이 사라졌다.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는 이용. 전북 현대 제공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는 이용. 전북 현대 제공

고통에서 벗어난 이용은 올해 펄펄 날았다. 국가대표와 소속 팀을 오가며 K리그와 FA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A매치까지 56경기를 뛰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최강희(前 전북) 감독님도 로테이션을 못 해줘 늘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난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너무 행복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는 비교적 늦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이용은 “집안의 종손이다. 귀한 손주 힘든 운동 시키면 안 된다는 할아버지를 설득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고 미소 지었다. 지금은 180cm지만 학창시절에는 체격도 왜소했다. 고1 때 키가 153cm이었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진학을 약속했던 대학이 갑자기 입학을 취소하는 바람에 다른 학교 입학 시기까지 놓쳤고 1년을 유급했다.

이듬해 중앙대에 들어갔지만 1년 간 체계적으로 운동을 못한 탓에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그는 “대학 감독님이 ‘축구 선수가 아닌 일반인 몸 같다‘고 하셨다. 그 때도 축구를 못하는 줄 알았다”고 돌아봤다. 잃어버린 1년을 되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면서 실력이 늘었고 조금씩 두각을 나타냈다.

이용은 “난 엘리트 코스를 밟아본 적이 없는 선수다. 늘 밑바닥에서 축구를 했다. 위기가 와도 밑바닥 경험을 생각하며 좌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11월 우즈베키스탄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황의조(오른쪽)와 기뻐하는 이용. 대한축구협회 제공
11월 우즈베키스탄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황의조(오른쪽)와 기뻐하는 이용.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에서 58년 만에 우승에 도전한다.

이용은 월드컵엔 두 차례(2014ㆍ18) 출전했지만 아시안컵 경험은 없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 때는 상무에 입대한 직후라 훈련소에 있었다. 그는 “훈련소라 축구 중계를 못 보고 조교가 말해주는 결과만 들었다. 참 추웠던 기억이 난다“고 웃은 뒤 “아시안컵에 간다면 꼭 우승하고 싶다. 올해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축구 열기가 뜨거워졌는데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우승 확정 후 최강희(왼쪽) 감독과 인사를 나누는 이용. 최 감독이 중국으로 떠나자 전북은 포르투갈 출신 모라이스 감독을 선임했다. 전북 현대 제공
우승 확정 후 최강희(왼쪽) 감독과 인사를 나누는 이용. 최 감독이 중국으로 떠나자 전북은 포르투갈 출신 모라이스 감독을 선임했다. 전북 현대 제공

전북은 최근 포르투갈 출신의 조제 모라이스(53) 감독을 새로 영입했다. 국가대표에 이어 소속 팀에서도 포르투갈 사령탑과 함께하게 된 이용은 “포르투갈어를 배워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농담한 뒤 “새 감독님께서도 공격 축구를 하신다고 들었다. 우리의 ’닥공‘(닥치고 공격)은 계속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