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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놀이와 공부

입력
2018.12.0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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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청소년 과학상황극 ‘톡신’ 본선 대회를 참관했다. 톡신이란 토크(talk)와 연극의 신(scene)이 결합된 신개념으로 과학적 내용이나 상황을 연극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선을 통과한 중학교, 고등학교팀이 과학연극을 펼쳤다. 어떤 팀은 바이러스나 에이즈의 원리를 연극으로 표현했고, 어떤 팀은 과학이 부흥했던 조선 세종시대 장영실의 과학발명을 상황극으로 만들었다. 청소년들의 과학연극이라길래 어설프고 어눌할 것이라고 짐작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발한 대사, 열정적 연기가 어우러져 멋진 퍼포먼스를 연출해냈다. 관객석에서는 시종일관 폭소가 터져 나왔고 극이 끝날 때마다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열정으로 빚어내는 과학상황극을 보고 있노라면 문송한 나 자신도 과학이 재미있다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과장하자면 웬만한 TV의 개그 프로그램만큼이나 재미있었다. 학생들이 어려운 과학을 재미있는 연극으로 표현하고 열정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힘이 뭘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를 미첼 레스닉의 평생유치원 개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레스닉 교수는 MIT 미디어랩의 교수로 코딩 플랫폼 ‘스크래치’를 개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요즘 코딩과 SW교육이 이슈가 되다보니 더욱 더 주목받고 있다. 최근 그는 ‘평생유치원’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한국어판 홍보차 방한했던 레스닉의 강연도 직접 들었다. 평생유치원이라는 개념부터가 참으로 기발하다. 그는 지난 천년동안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인쇄술이나 증기기관, 컴퓨터가 아니라 ‘유치원’이라고 말했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유치원은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1837년 독일에서 처음 연 유치원이다. 유치원은 어린이를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교육방식의 혁명이라는 것이 레스닉의 해석이다. 전통적 학교는 교탁 앞에서 선생님이 강의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글자, 숫자, 지식을 가르쳐주는 곳이지만 유치원은 아이들이 또래들과 어울려 놀고 체험하는 곳이며 공부와 놀이의 경계가 없다. 장난감, 공작재료 등 물건과의 교감을 통해 감성적 학습이 이루어질 때 창의성이 고도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도 평생 동안 유치원 다니듯 학습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평생유치원이라는 개념을 주창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네 가지 요소인데 이것이 레스닉의 창의코드 4P다. 첫 번째는 일방적 암기나 학습이 아니라 참여형 프로젝트(Project)고 두 번째는 열정(Passion)이다. 세 번째는 함께 하는 동료(Peers)이며 네 번째는 놀이(Play)다. 유치원의 교육방식은 4P를 기반으로 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하듯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동료들과 어울려 놀이하면서 저절로 학습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휘된다. 과학상황극에 참여한 학생들이 창의적 성과물을 만들어낸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그들에게 과학상황극은 하나의 프로젝트였고 그들은 열정을 쏟았으며 동료들과 어울려 아이디어를 모으고 협업했고 공부가 아니라 놀이처럼 즐겼던 것이다. 재미있게 즐긴다는 것이 ‘쉽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가장 큰 즐거움은 어려운 것을 해냈을 때의 즐거움이다. 어려운 과학도 즐길 수 있다면 다른 지식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4차 산업혁명시대는 평생학습이 필요하다. 기존 지식과 기술만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다. 토플러의 명언처럼 배우고 배운 것을 일부러 잊고 새롭게 배워야 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학습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유치원을 다니듯 즐기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 놀이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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