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
‘여성이 건축을 하는 건 자연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건축하는 여성은 여성성을 잃고 과민한 자웅동체가 되거나, 동성애에 빠지거나, 매춘 여성이 될 수 있다.’
독일의 이름 난 건축 비평가 카를 셰플러가 1908년 했다는 말, 아니 막말의 요지다. 세상의 거의 모든 빛나는 것들이 그렇듯, 건축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요즘도 그렇다.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는 여학생들은 많지만, 그들은 경력의 사다리에 제대로 올라보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사라진다. 그들이 전공을 잘못 고른 걸까. 험하다는 건축 판에 적응하기엔 너무나 연약한 걸까.
미국 뉴욕주립대 건축학과 부교수인 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가 쓴 ‘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는 건축업계가 여성을 지독하게 배제한 역사를 고발한다. 미국 여성들은 일찍부터 건축업계의 문을 두드렸다. 1880년대에도 여성 건축가가 나왔다. 그들에게 허용된 일은 ‘여성이 잘 알고, 잘 알아야만 하는 집안 인테리어’였다. “여성들은 빗자루로 청소를 하거나, 빗자루 수납함을 만들어야 한다.”
1991년 세계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프리츠커상은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에게 돌아갔다. 그의 성취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30년 동업자가 있었다. 부인인 데니즈 스콧 브라운.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브라운의 이름도 업적도 지워버렸다. 슈퍼스타도, 그를 옹립하는 소수의 권력자들도 오직 남성이어야 했으므로. ‘담나티오 메모리아이’는 누군가 후손에게 기억되지 못하도록 모든 기록을 삭제하는 고대 로마의 형벌이었다. 브라운은 여자라는 이유로 그 형벌을 받은 셈이었다. 세상은 아주 천천히 진보했다. 2004년엔 이라크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프리츠커상을 단독 수상했다. 그러나 평단과 언론은 그를 ‘상을 훔친 여자’ 취급했다.
2000년대 들어 건축학과 진학률로 치면 유리천장이 깨진 것처럼 보였다. 2014년 미국, 영국의 대학 건축학과 학생 중 여성은 44%였다. 그러나 학교에 여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없었다. “여성 건축가는 학교에서 논의되거나 기념되지 않아요. 건축가가 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2014년 건축지 아키텍츠 저널에 실린 여성 건축학도 인터뷰) 졸업 후 여성 건축가들이 만난 세상도 그랬다. 같은 해 건축회사의 경영진 중 83%가 남성, 사수의 87%도 남성이었다. 성차별, 임금 격차가 만연했다. ‘남성은 수직적 남근을 닮은 건축을, 여성은 곡선미 있는 자궁을 닮은 건축을 한다.’ 그런 비평이 당연한 곳에서 여성 건축가들은 아무리 뛰어나도 “여자치고 잘한다”는 ‘격려’를 들었다. 좌절한 여성 건축가들은 스스로의 실력을 의심하며 업계를 떠났다. 실력을 제대로 겨룰 기회조차 잡지 못한 게 진짜 이유였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
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 지음∙김다은 옮김
눌와 발행∙192쪽∙1만2,000원
남성들의 간편한 주장대로, 여성 건축가들이 출산과 양육 때문에 일을 포기하는 걸까. 저자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육아 때문에 건축을 그만 둔다고 한 여성은 3.8%에 불과했다고 반박했다. 그들이 ‘엄마’라는 사실이 아니라, ‘여성’이라서 못할 거라는 편견이 여성 건축가들을 내쫓고 있다는 얘기다.
건축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법조, 의학, 금융, 정치, 언론, 문화예술 등 어떤 분야를 들여다 봐도 여성들에게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더 크게 내고 문제를 일으켜야 한다.” 저자가 책에 담은 메시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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