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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데이터 시대, 프라이버시 대신 피드백을 택하라

입력
2018.11.3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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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안드레아스 와이겐드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

내 데이터 100% 보호는 어려운 시대

“규제 매달리기보다 관리권 요구해야”

스마트폰을 통해 나도 모르게 나에 대한 엄청난 데이터가 수집, 유통되는 시대다. 두려움에 떨며 프라이버시를 외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마존 수석과학자 출신 빅 데이터 전문가 안드레아스 와이겐드의 제안이다. 사계절 제공
스마트폰을 통해 나도 모르게 나에 대한 엄청난 데이터가 수집, 유통되는 시대다. 두려움에 떨며 프라이버시를 외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마존 수석과학자 출신 빅 데이터 전문가 안드레아스 와이겐드의 제안이다. 사계절 제공

입은 요물이다. ‘셀프 리포트’, 즉 ‘자기 보고’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위선과 거짓에 젖어있다. 해서 우리는 상대를 파악할 때 말보다, 그 말 뒤에 숨은 뭔가를 읽어내려 한다. 이 노력을 빅데이터로 확장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1. 한 회사는 인스타그램 사진 1억5,000만개를 분석, 멋쟁이들이 모이는 ‘힙스터 바 리스트’를 만들었다. 강렬한 색 립스틱 바른 얼굴 사진이 있으면 태그된 장소를 보는 방식이다. ‘잘 가다듬은 콧수염’을 좇다가 터키가 세계 최고 힙스터 국가로 부상하는 바람에 이를 수정하는 등 여러 시행착오도 물론 겪었다. 그러다 의도치 않은, 기묘한 걸 하나 얻었다. 바로 테헤란의 게이바 지도. 김영민 서울대 교수 표현을 빌리자면, 이슬람 힙스터란 무엇인가.

#2. 어느 게임회사는 10대 소년들의 나이별 게임 선호도를 알고 싶었다. 게임 계정 정보나 설문은 정확치 않았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을 막으려는 압력(?)을 떠올려보라. 아이들은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찾아낸 방법은 ‘마우스 움직임’이었다. 성장 중인 10대 아이들은 근육 발달 정도에 따라 마우스를 움직이고 클릭하는 게 다르다. 마우스를 굴려라, 3~6개월 오차 범위 내에서 네가 열 몇 살인지를 맞추겠다!

#3. 리베카는 페이스북을 하기로 했다. 리베카, 베키, 베카, 리바 등 리베카 계열의 이름을 지닌 이들과 친구 맺는 것으로 시작, 이를 바탕으로 다른 온라인 서비스로 보폭을 넓혔다. 마케팅 인력을 찾고 있던 헤드헌팅 회사는 SNS가 활발한 리베카에게 주목했다. SNS를 통해 나름 평판조회를 한 뒤 은밀하게 이직을 제안했다. 리베카는 온라인의 힘을 새삼 절감하며 행복하게 직장을 옮겼다, 가 아니다. 리베카는 가상 인물이었다.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의 저자 안드레아스 와이겐드. 사계절 제공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의 저자 안드레아스 와이겐드. 사계절 제공

거봐 SNS 따윈 쓸데 없는 시간낭비라니까, 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다 체크하는 IT공룡을 거꾸러뜨리자, 라고 새삼 버럭할 예정이라면 이 책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는 필요 없다. 아니 더 필요할 지 모르겠다. 조지 오웰과 그의 저서 ‘1984’를 거론하는 이들조차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다 자신의 진보적 생각과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포스팅을 연일 남김으로써 ‘빅 데이터 생성’에 엄청나게 기여하니까 말이다. 특히 저자는 미국 아마존 수석 과학자 출신에다 독일 메르켈 정부의 디지털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니, 사례는 풍부하고도 구체적이다.

저자가 결론적으로 내놓는 문장은 이렇다. “프라이버시는 환상에 불과하기에 우리 모두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좋은 출발점은 친구들에게 좀 더 솔직해지는 것이다.” 모두가 스마트폰 끼고 살아가는 이 시대, 프라이버시는 허구다. 데이터는 이미 공기 같은 존재다. 문제는 데이터가 아니라 데이터 이용법이다. “우리 사회는 기업과 기관이 미가공 데이터를 사용하는데 어떤 제한을 둘지를 논의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반면, 투명성과 주체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조직이 어떤 도구를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가드만 잔뜩 올릴 게 아니라 자기 호흡을 가지고 스텝을 밟아가며 원투, 원투 펀치를 날려 차근차근 포인트를 따가자고, KO 대신 판정승을 노려보자고 제안하는 셈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빅데이터에게도 적용된다. 숨기지 말고 오히려 정확한 피드백을 줘야 한다. 사계절 제공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빅데이터에게도 적용된다. 숨기지 말고 오히려 정확한 피드백을 줘야 한다. 사계절 제공

저자는 일단 프라이버시가 원래 민주주의의 적이었음을 주장한다. ‘친구’가 아니라 ‘적’이다. 애초 민주주의 원칙은 비밀투표가 아니라 공개투표였다. 손 들거나, 방의 한쪽 구석에 모이는 것으로 의사를 표시했다. 투표 용지는 비밀 투표 때문이 아니라 “다시 세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프라이버시는 황색언론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개개인 모두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홀라당 다 까버리는 황색언론이 되지 못해 안달 난 21세기엔 어울리지 않는 원칙이다.

저자는 그 대신 투명성과 주체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명성은 데이터에 접근할 권리, 점검할 권리, 그리고 주체성은 데이터를 수정할 권리, 흐릴 권리, 이전할 권리 등으로 구성된다. ‘IT기업 망해라’가 아니라 구체적 조항을 들고 이러저러한 것을 요구하라는 얘기다. 이 부분은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니 책을 직접 보길.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

안드레아스 와이겐드 지음ㆍ홍지영 옮김

사계절 발행ㆍ440쪽ㆍ2만2,000원

정말 이 모든 게 싫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스마트폰, 이메일, 검색을 다 버리면 된다. 실제 그런 이유 때문에 2G폰, 유선전화, 편지 같은 걸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문제는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어느 정도 ‘갑’ 축에 드는 이들 아니고선 쓰기 힘든 방법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갑이라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쳐도, 당신 빼고 다 스마트폰, 이메일, 검색을 쓰는데 그 방법인들 데이터를 생성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차라리 솔직해지는 게 낫다는 제안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가끔 헐벗은 여인네들이나 불순한 목적이 있는 듯한 남정네들이 피드에 너무 자주 나타나고 친구신청을 해댄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경우 투덜댈 게 아니라 단호하고도 부지런하게 차단과 스팸 처리를 해야 한다. 어차피 할 것이라면 확실한 피드백을 주란 얘기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 사실 은근히 즐겼을 지 모른다. 절대 아니라고? 앞서 봤듯 10대 소년들은 ‘입’이 아니라 ‘마우스’로 말했다. 당신은 아마 ‘홱 보는 시간’으로 말했을 것이다. ‘포스트 프라이버시’란, 그런 것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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