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2015년 신년 기획으로 선거제도 혁신 방안을 보도하면서 ‘독일식 광역 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 적이 있다. 명칭이 상당히 길지만 간단히 말하면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취지였다. 전국 정당 득표율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우리와 달리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의 의석수를 확정한 뒤 그 범위 내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게 독일 제도의 핵심이다. 중앙선관위가 그해 2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으로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또한 같은 개념이다.
□ 하지만 당시 논의는 정치권, 특히 여당인 새누리당의 외면으로 사장되고 말았다. 19대 총선 결과를 독일식 선거제로 전환했을 때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의석은 큰 변동이 없었지만 통합진보당은 무려 3배가량 많은 33석을 얻는 시뮬레이션 결과에 정치권 논의는 동력을 상실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사실 소수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거대 정당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사실상 당론으로 확정하며 개혁 의지를 피력했지만 다수 여당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 더불어민주당이 돌고 돌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면서 선거제도 개편의 큰 가닥이 잡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독일 제도를 근간으로 했다는 점에서 3년 전 논의가 결실을 맺은 셈이다. 하지만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오락가락했던 입장을 감안하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당 득표율에 해당하는 의석수를 지역구에서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한 석도 못 가져간다”며 연동형에 부정적 시선을 보냈던 민주당도 정치적 이해타산을 앞세워 제도 혁신에 반대했던 과거 새누리당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 민주당의 입장 변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탄력을 받게 됐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불리한 제도를 반대하고 있는데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 및 국회의원 정원 확대 등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오랜 전통 속에서 다당제를 확립한 독일식 제도를 도입할 여건에 대한 정치권의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정당이) 과연 독일처럼 분명한 정책을 갖고 경쟁해서 (연립정부의) 다수를 구성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고언(苦言)을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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