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와 의회가 중동의 맹방인 사우디를 놓고 둘로 쪼개졌다. 정부는 사우디 왕실을 두둔하는 데 급급한 반면, 의회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책임을 물어 군사지원을 중단하라며 행동에 나섰다.
사우디는 미국의 눈엣가시인 이란을 옭아매기 위한 핵심 동맹국이자 전초기지다. 지난 5일 이란 제재 시행 이후 전략적 중요성은 더 커졌다. 온갖 비판에도 불구,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를 미국이 줄곧 지원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꼼짝도 하지 않자, 보다 못한 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미 상원은 28일(현지시간) 사우디 지원 중단 결의안을 추진하기 위한 안건을 표결에 부쳐 63대 37로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이 53대 47로 상원 다수당인 점을 감안하면 내부에서 적잖은 이탈표가 나온 셈이다. 주요 현안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온 측근 린지 그레이엄 의원조차 찬성표를 던지며 정부를 압박했다. 상원은 며칠 안에 결의안 채택을 위한 최종 표결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날 표결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상원에 출석해 “미국이 발을 뺀다면 예멘은 더 끔찍한 지옥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상원 보고에 불참한 것을 놓고 의원들이 격분하면서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카슈끄지 피살 관련,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연관됐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며 사우디를 옹호하는 데 그쳤다. 지난 18일 “CIA 조사 결과 카슈끄지 살해 배후는 빈살만”이라는 내용을 미 언론이 일제히 보도해 백악관과 국무부가 곤욕을 치른바 있다.
사우디를 향해 채찍을 든 의회의 반격에 맞서 트럼프 행정부는 당근으로 전략무기 카드를 꺼냈다. 로이터는 미 록히드마틴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발사대 44기와 관련 장비 등 150억달러(약 16조8,0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에 양국이 서명했다고 전했다. 국무부는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극단주의 세력의 탄도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사우디와 걸프지역의 장기적 안보를 보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사드 수출은 지난해 미 의회가 승인한 내용이다. 하지만 카슈끄지 살해 직후인 이달 15일 사우디에 모든 무기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상원에 발의된 상황에서 정부가 보란 듯이 사우디에 선물을 안긴 건 군사적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0일 “미국은 사우디의 변함없는 동반자로 남을 것”이라고 우의를 과시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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