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주총 결의 효력 정지 판결
한국GM 항소 땐 장기화 전망

한국지엠(GM)이 추진하고 있는 연구개발(R&D) 법인 분리 절차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일단 KDB산업은행의 손을 들어줬지만 한국GM이 즉각 반발하고 나서면서 사태는 장기전으로 치달을 공산이 커 보인다. 미국 GM 본사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서울고법 민사40부(부장 배기열)는 28일 한국GM 2대 주주(지분 17.02%)인 산업은행이 “주주총회 결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한국GM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한국GM이 지난달 임시주총에서 결의한 R&D 법인 분할계획서 승인 건의 효력은 정지됐다.
재판부는 한국GM의 이번 주총 결의가 정관을 어겼다고 봤다. 당시 찬성 의결권 중 보통주는 3억4,400여만주로, 한국GM의 보통주 총수(4억1,500여만주)의 82.9%를 차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국GM 정관에 따르면 회사 분할은 85%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특별결의 대상”이라며 “3억5,300여만주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이뤄진 결의는 정관 규정을 위반한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R&D 법인 분할 같은 중대한 사안은 특별결의에 해당하는 만큼 산은의 동의도 필요하다고 본 셈이다. 다만 재판부는 산은 역시 담보로 10억원을 공탁하거나 해당 금액을 보험금액으로 하는 지급보증 위탁계약을 체결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앞서 산은은 지난 9월 한국GM의 회사 분할 안건을 처리할 주총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주총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기각됐다. 이후 한국GM은 지난달 19일 산은과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주총을 열어 R&D 신설법인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 설립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국GM의 이 같은 ‘나홀로 주총’ 결의에 대해 산은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반발하며 주총결의 효력정지로 신청 취지를 변경해 지난달 24일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난 5월 한국GM 정상화를 위해 8,000억원의 국고를 투입한 산은으로서는 한국GM의 일방통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도 R&D 법인 분할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 한국GM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항소를 하거나 산은과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GM이 R&D 법인 분리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양측의 법적 다툼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GM 관계자는 “매우 유감스러운 판결로 동의할 수 없다”며 “항소를 검토중이며 앞으로도 R&D 법인 설립을 통해 회사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GM 본사는 지난 21일 로베르토 렘펠 GM 수석 엔지니어를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 대표이사로 임명하는 등 신설 법인 이사진 6명을 선임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신설법인 발기인 총회 등 향후 일정은 불확실해졌다. 신설법인을 연내 설립하긴 힘들어 보인다.
산은은 공이 한국GM으로 넘어간 만큼 일단 한국GM의 반응을 예의주시하기로 했다. 산은 관계자는 “이번 법원 결정과 별개로 진행 중인 주총무효 본안소송을 그대로 진행하면서 한국GM의 움직임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GM 본사가 26일(현지시간) 북미 5곳, 해외 2곳 등 7곳의 공장을 내년부터 가동 중단하고 1만4,000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법원의 제동에도 GM 본사 차원에서 진행되는 글로벌 구조조정의 큰 흐름을 바꾸긴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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