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고에서만, 그것도 학교가 나서서 화장을 가르치냐는 거예요.”
서울 M여고 3학년 홍지연(18)양은 최근 수능 이후 일정을 담은 학교 안내문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내기 메이크업, 새내기 패션스타일링, 건강한 몸매 만들기 등 외모 관련 프로그램이 3개나 있었다. 홍양은 “이전까지 화장을 ‘금지’하던 학교가, 수능이 끝나니 갑자기 화장을 ‘권장’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심지어 같은 재단의 남자고등학교에는 그런 류의 프로그램은 아예 없었다.
홍양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친구들은 곧 강의 취소를 요청하는 편지를 교장에게 보내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관련 내용을 공론화했다. 학교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학교 관계자는 “정례적으로 해왔던 강의이고, 지난해만 해도 학생들 반응이 좋아 올해도 추진한 건데 이렇게 받아들일 줄은 예상을 못했다”라며 “외모 관련 강의를 모두 취소하고 독서와 진로 관련 활동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메이크업 강의에 대한 고3 여학생들의 반발은 홍양 등이 만든 SNS에서 분위기를 탔다. ‘우리 학교도 메이크업 강의를 한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M여고와 바로 인접한 D여고생 이모(18)양은 “최근 학교에서 고3을 대상으로 퍼스널컬러(신체 색깔에 어울리는 이미지 연출) 강의를 하며 ‘사회에 나가면 어쩔 수 없이’ ‘여자라면 당연히’ 화장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면서 “화장하지 않는 얼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자연스레 갖게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는 최근 젊은 여성들에게 불어 닥친 ‘탈코르셋(코르셋처럼 강박으로 느껴지는 미의 기준을 거부하겠다는 운동)’ 바람과도 연결된다. 수능이 끝난 이후 대부분 여고에서 일종의 관행처럼 받아들여지던 고3 대상 외모 특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아울러 초등학생 24.2%, 중학생 52.1%, 고등학생 68.9%가 화장 경험이 있다는 현실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화장을 해 왔고, 한 반에 3분의 1 정도는 풀(full)메이크업을 한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왠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초라한 기분이 든다”는 게 요즘 청소년들 얘기. 화장이 대중화한 만큼 반감도 커진 것이다.
강의 취소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홍양 등의 고민은 계속된다. “대학에 가고 사회에 나가면 화장을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텐데,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화장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화장하지 않은 내 얼굴을 부끄럽게는 생각하지 않고 싶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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