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어린 남자 후배들의 승진이 먼저인 이유에 대해 주변에서는 ‘화분 드는 일을 남자들이 하잖아’라고 하더군요. 신입 직원들에게 성별 상관없이 일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는 싶은데….”
공공기관에 다니는 40대 여성 방모씨는 28일 서울 중구 CGV명동에서 열린 ‘노동시장 성평등 확보 방안 토크 콘서트’에서 이같이 털어놨다. 그는 15년을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일 잘하면 여자라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접었다. 방씨는 “공공기관에서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여성들을 신입으로 뽑더라도 이른바 ‘주요’ 사업부에는 배정하길 꺼린다”면서 “유리천장은 없어도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하는 ‘유리벽’으로 견제하는 현상은 있다”고 꼬집었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에 앞서 아예 노동시장의 진입단계에서부터 두텁고 견고한 유리벽을 세워 남성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위원회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공동주최로 열린 이번 토크 콘서트는 경력단절과 맞벌이ㆍ외벌이, 취업준비생 등 각계각층의 여성 30여명이 참석해 국내 노동시장의 광범위한 성 차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일상 속에서 숨쉬듯 겪어 온 차별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서로 공감하고 위로를 나눴다.
성 차별은 채용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남성이 취업에 유리하다고 응답한 기업이 74.2%로 여성(25.8%)의 세 배 수준이었다. 여성들은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노동시장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초등학생 때부터 안경을 사용한 대학생 조모씨는 “최근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면접관으로부터 ‘여자분이 안경 쓰면 안 되는데’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평소 성격 같았으면 그게 왜 안 되냐고 따져 물었겠지만, 일을 구하기 위해서 바로 안경을 벗고 ‘잘 보입니다’라고 얘기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입사 면접에서 성차별적 질문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람인의 같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면접에서 성별을 의식한 질문을 받아봤다고 응답한 여성 구직자는 50.8%로 과반에 달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임신, 출산, 육아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20대 주부 박모씨는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퇴사를 강요 받았다”면서 “그만두지 않으면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에게도 (퇴사)압력을 넣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참석자는 “육아휴직 후 복귀했더니 ‘네가 와도 할 일이 없다’는 식으로 회사를 그만둘 것을 종용 받았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출산, 육아로 인한 불이익을 금지하고 있지만 노동현장에서는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올해 1월 발표한 ‘육아휴직 사용실태 및 욕구’ 조사에서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 근로자 5명 중 1명은 복직하지 못했다. 특히 이 가운데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회사의 부당한 처사 때문’에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응답이 18.4%으로 나타났다.
자리에 함께한 전문가들은 국내 노동시장의 남녀 격차가 통계 상으로도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장은 “1987년에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고 30년이 지났지만 남녀 고용률 격차는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특히 여성들이 30대에 출산으로 경력단절 되면서 여성들의 인적자원 수준이 높아진 것이 노동시장의 변화로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윤숙 처출산위원회 사무처장은 “제가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악착같이 육아를 하면서 전쟁터에서 살아남 듯 여기까지 왔다”며 “저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딸은 다른 세상에서 살겠거니 하고 견뎌왔는데 큰 변화가 일어난 것 같지않아 죄송하고 답답한 마음”이라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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