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모르게 부모님이 오래 전 남들에게 빚을 졌다면? 사과하고 빚을 갚는 게 도리일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거나 부모와는 의절하고 산지 오래라면? 무턱대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부모 빚 때문에 구설에 오른 이가 연예인이라면 대중의 시선은 사뭇 달라진다.
최근 열흘 사이 래퍼 마이크로닷(본명 신재호ㆍ25)을 시작으로 래퍼 도끼(본명 이준경ㆍ28)와 배우 겸 가수 비(본명 정지훈ㆍ36), 그룹 마마무의 휘인(본명 정휘인ㆍ23), 배우 차예련(33)이 부모가 빌린 돈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잇달아 도마에 올랐다. 마이크로닷 부모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잇따르고, 피해 금액이 20억원을 넘을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불똥이 다른 연예인에게 튀었다. ‘미투’에 빗댄 ‘빚투’(#빚tooㆍ나도 떼였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부모의 죄를 매번 연예인 자식에게 묻는 게 온당한 일일까. ‘빚투’는 왜 벌어졌으며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짚어봤다.
양승준 기자(양)= “마이크로닷 사건 이후 ‘빚투’가 이어진 건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작용했다. 쟁점이 돼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했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수사할 수 있었는데 놓쳤다는 허점이 드러난 거다. 이 사례를 보고 법적으로 구제 받지 못한 피해를 '빚투'로 폭로하고 그렇게 하면 보상의 길 열린다고 본 것 같다. 억울함도 풀고."
강은영 기자(강)= “쟁점이 된 방식이 문제다. 연대보증이나 부모의 사기를 적극적으로 방조하지 않은 이상 부모의 채무에 자식의 법적 책임은 없다. 익명으로 보도가 돼야 했다.”
김표향 기자(김)= “연예인의 실명이 공개되면서 부모의 죄가 자식인 연예인들의 죄처럼 인식됐다. 책임이 연예인에 지워진 측면은 문제다.”
양= “일을 키운 건 연예인 탓도 크다. 도끼는 채권자에 ‘한 달 식비가 (빌렸다는 돈인) 1,000만원’이라며 경솔하게 돈 자랑을 했다. 마이크로닷은 피해자에게 사실 확인도 전에 법적 대증을 운운해 역풍을 맞았다. 이들의 무성의한 태도로 여론이 싸늘해졌다.”
강= “‘돈이 없어 못 갚은 게 아니라 몰라서일 뿐이었다’는 입장이었지만 더 공손하게 말했어야 했다. ‘왜 푼돈 가지고 날 괴롭히냐’는 식으로 말해 공분을 산 거다. 괘씸죄랄까."
김= “댓글에 ‘사기꾼 아들’이란 표현이 많다. 차분하게 보면 ‘마녀사냥’이다. 우리사회의 가족주의적 특성이 깔렸다. 사회 시스템이 취약하니 어떤 개인의 문제를 그 가족에게 전가한다. 부모의 노후를 사회가 책임지지 않으니 그 책임을 자식에 묻는 것처럼. 영미권에선 가족이라 해도 구성원들이 독립체라 여겨 ‘빚투’까지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
강= “‘빚투’가 연좌제 성격을 띄게 하는 건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 탓이 크다. 많은 언론이 ‘부모가 사기 행각을 저질렀으니 마이크로닷이 그 책임을 져라’는 쪽으로 몰고 가고 있는 형국이다. 연예인이 부모의 잘못에 도의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해도, 언론이 이를 몰아가는 식으로 해선 곤란하다. 광풍처럼 보도가 이어지니 휘인과 차예련은 해명을 하며 부모의 이혼 등 아픈 개인사를 털어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양= “이용주 의원 음주운전 관련 경징계 논란이 있을 때 ‘연예인도 음주운전 하면 연예 활동 중단하고 1~2년 방송 못 나오는데’란 비판이 있었다. 그만큼 사회가 연예인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경향이 있다.”
김= “대중과 친숙한 유명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 연예인을 ‘알량한 재주’로 돈 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잣대를 엄격하게 만드는 것 같다. 대중의 사랑을 바탕으로 돈을 상대적으로 쉽게 많이 버니까, 그만큼 사회적 책임도 크다는 인식이 은연 중에 있다.”
강= “리얼리티프로그램 등으로 연예인들의 ‘부’가 다양하게 보여지다 보니 대중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예전보도 더 커진 듯하다. 저렇게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라면 도리를 제대로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빚투’ 폭로가 잇달아 나오고 대중의 관심을 사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개인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김= “‘미투’는 성과 관련해 사회 전반의 문화를 바꾸는 운동이지만, ‘빚투’는 그렇지 않다. 마이크로닷의 경우엔 사회 정의 실현 차원에서 폭로가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빚투’는 사회 개혁이나 정의와 거리가 멀다. 누군가를 망신 주기식으로 변질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강= “비슷한 맥락에서 ‘미투’에서 따온 ‘빚투’라는 말도 적절한 조어는 아니라고 본다. ‘빚투’라는 단어가 마치 사회 운동처럼 느껴져 과도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정리=김현종 기자 choikk99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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