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복심 알 때까지 공부” 수습 기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의 통역은 단순한 말 전달자가 아니다. 24시간 감독과 동행하며 의중까지 파악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감독의 ‘복심’이라 언론의 관심도 집중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기자들이 가장 인터뷰하고 싶어한 사람은 거스 히딩크 전 감독 통역이었던 전한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이었다.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49) 감독이 지난 8월 중순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뒤 통역은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의 스페인 통역이었던 이윤규 사원이 임시로 맡았다. 스페인과 브라질에서 거주한 이씨는 스페인어 외에 포르투갈어도 능하다.
하지만 국가대표 지원팀 소속인 이씨는 원래 다른 업무가 있는 처지다. 협회는 8월 말 벤투 감독 전담 통역 직원을 채용하겠다고 공고했다. 통역은 감독의 비서 업무도 겸해야 해서 자기 시간이 거의 없는 고된 직업이지만 70명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협회 조준헌 홍보팀장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국가대표 현장을 직접 뛴다는 건 로망 아니겠느냐. K리그 구단들의 통역 외에도 포르투갈어를 잘 하는 젊은 인력들이 많이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10월 1일 최종 합격한 사람이 김충환씨다. 벤투 감독도 두 차례 면접관으로 직접 참여해 자신의 복심을 골랐다.
국내 대학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한 김씨는 포르투갈로 유학을 가 현지 대학에서 공부했고 포르투갈 프로축구 3부 리그 아나디아FC에서 일했다. 한국 프로축구 광주FC에서도 1년 간 브라질 선수와 피지컬 코치의 통역을 맡았다. 브라질과 포르투갈 모두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쓰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김 씨는 브라질이 아닌 포르투갈에서 언어를 익혔다는 점에 벤투 감독이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한다.
김 씨가 채용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벤투 감독의 공식 기자회견 등 중요한 행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통역은 이윤규씨다. 김씨는 이씨가 자리를 비운 호주 원정 평가전 출입국 인터뷰 때만 잠시 통역을 봤다. 나머지 행사에서 김씨는 이씨 옆에서 열심히 메모만 할 뿐이다. 벤투 감독 부임 후 가장 큰 국제 대회인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의 메인 통역도 김씨가 아닌 이씨다.
이는 벤투 감독의 요청이었다. 조 팀장은 “공식 기자회견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는 감독 말의 뉘앙스까지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통역을 할 수 있다. 김충환씨가 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고 충분히 공부한 뒤 적응을 마치면 아시안컵 후부터 메인 통역을 맡기겠다는 게 벤투 감독의 생각이다. 감독님이 듣던 대로 치밀한 성격인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은 일종의 수습 기간인 셈이다.
벤투 감독은 김충환씨를 처음 만났을 때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자신감 있게 했으면 좋겠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감독님이 저를 편하게 대해주시려는 모습이 보였다”고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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