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CEO를 위한 법률 이야기
- 법은 규제가 아니라 기회이자 새로운 영토라는 생각 -
이경선(서강대 겸임교수·법정책학, 입법학)
온갖 역경을 거치면서 사업을 이끌고 있는 중소기업 CEO분들께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법률지식이란 게 무엇일까 고심해 본다. 사업을 이제 시작하시는 분들이라면 몰라도, 구력이 쌓인 기업가분들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현장 법률지식 정도는 어느 정도 몸으로 체득되어 있을 것이다.
사업에 필요한 복잡하고 세세한 법률정보나 법적 문제는 변호사, 법무사, 변리사, 회계사, 노무사 등의 조력을 받으면 된다. 일선 현장 공무원들에게도 꼼꼼하게 묻다 보면 그럭저럭 법적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알게 된다.
다만, 법률적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것을 맡기고 묻고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큰 스트레스가 된다. 회사의 명운을 가를 중요한 법률적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부담감도 크다. 특히나,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전문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자문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법률전문가도 공무원도 자신이 주로 맡아왔던 업무의 법률지식만 잘 알 뿐이지, 기업가가 신경 써야 할 사업의 전 영역, 기업 생애 전체에 걸친 법률지식을 꿰차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업을 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법률 문제를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어림잡아 수백 가지는 될 듯하다. △주식회사나 협동조합 등 회사 형태에 따른 경영 방법, △각종 법인 공증과 등기 절차, △임금 지급과 4대 보험 처리를 비롯해 근로자의 노동권 보호 문제, △동업을 하다 갈등이 생긴 경우 대처 방법, △사업 콘텐츠와 기술의 특허나 저작권 보호 방법, △채무 관리를 비롯해, 채권을 잘 관리하고 청구하는 방법, △공무원으로부터 행정적 제제를 받았을 때 대처하는 문제, △사업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 △합법적으로 회계 처리하고 절세하는 방법, △동종업계 회사와 공정하게 경쟁하고, 거래처 갑질이나 기술탈취 등 불공정 행위에 대처하는 방법, △상품을 광고하는 방법, △약관이나 제품 안전성 관리 등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고, △소비자와 분쟁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방법, △가맹 계약을 하거나, △보증보험에 가입하거나 담보를 주고받는 방법, △물품을 운송하거나, △사고가 났을 때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방법까지, 기업법무는 사업 특징에 따라, 그리고 규모와 영역이 커질수록 계속해서 늘어난다. 사업이란 게 콘텐츠 생산과 매출과의 싸움이라지만, 어찌 보면 법과의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 사업가의 길을 택한 이상 현실을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업가는 월급 받고 맡은 일만 소화하면 되는 직원을 능가하는 존재다. 법률지식, 법적 문제, 법제도는 너무 어렵고 성가시다는 경직된 시각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야 한다. 사업 전반에 걸쳐 그 어떤 법적 사안도 사전적으로든 사후적으로든 효과적으로 처리해 가겠다는 공세적 마인드, 능동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근성만으로도 사업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법이 왜 이 따위야’, ‘왜 이렇게 법으로 규제하는 게 많아’하고 비토하면서 혈압을 올릴 것이 아니라, 법이 새로운 기회, 영토, 시장일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이십 년 전에도 있었고, 작년에도 있었고, 십 년 후에도 있을 것이다. 규제 그 이면에 있는 블루오션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현재까지 인터넷 검색이나 책으로 소개되고 있는 법률지식은 주로 분쟁 예방과 사업 리스크 대처에 중점을 둔 내용들이 많다. 핵심은 각종의 영업 과정에서 형성되는 법률적 사안들을 계약서·합의서 등 유효한 서면으로 잘 정립해 두라는 것이다. 또 고소·고발 또는 민사소송에 직면했을 때 사법적 대응을 잘 구사할 수 있는 팁을 일러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어느 사이트, 어느 책에서도 기업법무 전체를 통섭적으로 아울러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기업법무 전반을 암기하지는 못하더라도, 법조인에 능가하는 법률적 감각. ‘이런 게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겠구나’, ‘이런 것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겠구나’, ‘이 문제는 어느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겠구나’하는 탁 트인 감각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산 정상 올라 산하의 형세를 내려다보듯, 전지적 시선으로 사업과 관련된 모든 법률와 법제도를 좀 큰 틀에서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법령이라는 숲과 산 전체를 보게 되면, 개별 사안 하나하나, 낱개로 만나는 법적 문제나 장벽에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기업 관련 법무 전체를 조망한다는 생각으로, 한 걸음 구체적으로 들어가 본다. 대한민국「헌법」은 주지하다시피, 인권에 관한 사항과, 권력 운용에 관한 사항을 130개 조문에 걸쳐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특별히 농어업, 국토, 자원, 과학기술과 더불어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물론, 노동3권 조문을 비롯해 「헌법」의 어느 규정이든, 따지고 보면 중소기업이나 회사 운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게 된다. 그러면서도, 「헌법」은 제123조 제3항에서 특별히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고 하고, 제5항에서 국가는...(중략)...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은 제119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여 자유시장경제 질서에 입각한 나라임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제2항에서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상대적으로 약체인 중소기업을 돕는 행정과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고 있다. 다만 이 규정이 중소기업과 사업을 제한하는 다양한 규제를 설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1428개의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그 이하로 14만 개 정도의 하위법령, 행정법규, 자치법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모든 법규들도 헌법 조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관점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사업을 전개하는 일과 연결된다.
한편, 「민법」이나 「상법」만이 아니라, 「산업표준화법」, 「계량에 관한 법률」, 「국가표준기본법」, 「제품안전기본법」, 「약관 규제에 관한 법률」,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무역거래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 「소비자기본법」,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협동조합 기본법」,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 등등 중소기업을 둘러싼, 꼭 알아둬야 할 법률들이 수백 가지다.
그 가운데, 중소기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법률만 따로 모아 보면, 그나마 심플하게 10개 내외 법률로 추려볼 수 있다. 「중소기업기본법」, 「중소기업진흥에 관한 법률,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중소기업기술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법」, 「중소기업 사업전환 촉진에 관한 특별법」,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그리고 올 6월부터 시행된 「중소기업 인력지원 특별법」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상기할 점이 있다. 지금도 국회에서는 중소기업과 관련된 새로운 지원 제도와 규제들이 계속해서 법안으로 발의되고 통과되고 있다. 그 가운데, 새로운 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법률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과거 역사적·정치적·사회적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거나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취지의 과거사정리형 법률들, △국제행사 등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의 행사지원형 법률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의 보호지원형 법률들, △각종의 폐자원 등을 다시 활용하도록 촉진하기 위한 취지의 재활용촉진형 법률들, △특정 범죄행위에 대해 무겁게 처벌하도록 하는 가중처벌형 법률들, △기피혐오시설 주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배려하는 차원의 주변지역지원형 법률들, △각종 공단이나 공사 및 연구원이나 협의회 등을 세워 공공사업을 전담하게 하는 기관설치형 법률들, △일정한 재원(기금)을 토대로 공공사업을 전개하도록 하는 기금회계형 법률들, △회계사부터 노무사까지 각종의 전문인을 양성하고 전문서비스 독점을 보장하는 내용의 전문자격형 법률들 등, 대략 40여 종의 다양한 입법 목적과 설계 구조를 가진 법률들로 나뉘는 것이다. 물론 여러 패턴을 경합적으로 나타내는 법률들도 있다.
여기에, 특정한 영역이나 주제의 새로운 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고 발전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육성진흥형 법률들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육성진흥형 법률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바로 이 흐름을 사업하시는 분들이 각별히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예외가 있기 마련이지만, 대체로 육성진흥형 법률들은 법률 제명에서 ‘조성, 발전, 촉진, 개발, 장려, 활성화’의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입법례를 들어 보면, 「국제회의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 「말산업 육성법」,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씨름 진흥법」, 「외식산업 진흥법」,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이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관상어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소금산업 진흥법」, 「삼차원프린팅산업 진흥법」 등 방대하게 찾아볼 수 있다.
여건이 미약한 중소기업은 여러 가지 재정적·기술적·행정적 지원 법제도를 이용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는, 입법 동향을 주시하여, 법제도적 기반으로 새롭게 형성될 사업 영토와 시장을 발 빠르게 개척해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 국회의 입법과 정부의 정책, 지자체의 자치법규에 따른 지방시책까지, 법제도의 실태와 동향을 주시하면, 정부 예산의 흐름이 보이고, 경제가 보이고, 신산업과 투자처가 보인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현재 시행 중인 전체 법률 제명만이라도 쭈욱 한 번 훓어보는 조망의 시간을 갖기를 꼭 권해 본다. 법은 뜻밖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경제영토들을 잘 구획해 놓은 지형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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