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베트남 정치의 변화 - 이한우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베트남을 설명하는 여러 표현 중에 ‘실용주의’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베트남전의 상흔이 가시기도 전에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한 외교정책이나 내국인 카지노를 열어 만연한 도박을 양성화하고 그를 통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정책이 한 예다.
공산당 일당체제인 정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한우(59)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중국, 북한 등과 함께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변화는 없지만, 그 체제 내에서 점진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게 특징”이라며 “베트남의 정치도 시대 변화에 맞춰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베트남 정치를 비롯, 개혁과정을 연구한 국내 손꼽히는 베트남 전문가다.
베트남 정치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이 교수는 국회의 기능 강화를 꼽았다. 그는 “과거에는 모든 국회의원들이 각 기관에 근무하며 일부 시간에 의정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의원 35% 이상이 전임의원”이라며 “의회의 전문성이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전문성을 겸비한 의원들은 소신 발언을 하며, 이런 장면들은 전파를 타고 전국에 중계된다. 국회의원들이 한때 당과 정부의 거수기 노릇을 했을지언정, 현재는 상당한 수준으로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국회에서 선임하는 국가주석을 비롯한 50명에 가까운 정부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신임투표도 그 일환”이라며 “투표를 통해 정부 중간 평가를 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대단히 특이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5년마다 직접선거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도 변화의 예다. 공산당원이 아닌 인사도 입후보할 수 있게 됐고, 각 기관의 추천 없이도 일반인이 스스로 후보에 지원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당의 지도를 받는 베트남조국전선이 입후보자를 심사, 최종 선정하는데, 의원 정수보다 많은 후보를 선정, 국민들이 그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베트남 선거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 분야서도 다른 공산당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급격한 변화 가능성은 낮다. 사회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일련의 움직임들이 동시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당의 노선에 맞지 않는 서적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과학기술부 차관 출신의 쭈 하오 지식출판사 대표에 대해 징계를 한 바 있다. 또 사이버 보안부대를 창설했고, 내년에 발효되는 사이버 보안법 등도 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이 교수는 “이번 국회에서 국가주석직까지 맡게 된 응우옌 푸 쫑 당서기장은 사회주의 가치 유지에 힘쓰는 정치인”이라며 “사회주의 체제는 유지하면서도 경제성장을 위해 개혁 개방을 지속해 국력을 키워 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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