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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병권(甁權)과 병역(甁役)

입력
2018.11.2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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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야흐로 연말이다. 바쁜 업무와 일상을 핑계로 못보고 지내던 지인들과 송년회, 안 되면 신년회로 약속을 잡고 만나 회포를 푸는 시즌이다. 이들 모임에 빠지지 않는 것이 폭탄주다. 건강을, 각자의 행복을, 승진을 기원하는 건배사와 함께 폭탄주를 마시곤 한다. 예전에는 양주와 맥주를 꽉꽉 채워 이른바 ‘텐텐주’를 만들어 마셨지만, 요즘에는 소주와 맥주로 주종이 바뀌면서 분량도 절반씩만 따라 마시는 게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모임의 최고령 혹은 최선임자가 폭탄주를 제조해 ‘하사’하고 나면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고 또 마시곤 한다. 폭탄주 문화가 군대에서 비롯됐다는 ‘썰’ 때문인지 폭탄주 제조자는 ‘병권(甁權)’을 쥐었다고도 한다. 5~6년 전 저녁자리에서 만난 한 장성은 “전 군인이라 ‘권(權)’자 들어가는 건 잡으면 놓치고 싶지 않다”며 자리 내내 폭탄주를 본인이 직접 만들어 건넸다.

사실 술자리에서 한 순배 돌 때마다 마신 사람수만큼 폭탄주를 만들어 바치는 건, 특히나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겐 고역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로선 술맛을 잘 모르니 적당히 남들 하는 비율 대로 소주와 맥주를 섞는 탓에 때로는 “맛 없다” “이것밖에 못하냐”는 타박까지 듣기도 한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 후배는 “병권은 무슨, 병역(甁役)이죠”라고 푸념했다. 술을 강권하던 음주 문화가 바뀌면서 ‘병권’이라는 용어가 병을 다루는 사역이라는 의미의 ‘병역’으로 바뀐 거다. 최근 만난 검사장도 후배에게 폭탄주 제조를 맡기면서 “병역을 맡아주시죠”라고 했다. 모두가 권력, 권한을 원하는 것 같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바람 잘 날 없는 서초동 법조계에도 ‘권’을 두고 말이 많다. 박근혜 정부가 물러난 뒤 들어선 현 정부는 개혁 1순위로 검찰을 지목했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기소독점주의)의 힘을 빼기 위해 가칭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둬서 견제하고, 특별수사를 제한하고 직접수사를 줄이는 대신 경찰에게 수사를 맡기고 수사종결권을 주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법무부ㆍ행정안전부 장관이 청와대와 논의했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은 배제됐다. 경찰, 검찰 각자 주장을 내놓았지만 반영되지 않았고 모두 불만을 내비쳤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 검찰에서 내놓은 입장이 놀부 심보예요, 제가 볼 때는. 단 한 개도 내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자 문무일 검찰총장은 “저희가 다 내놓으면 경찰하고 검찰 합치면 됩니다. 그렇게 하기를 바라십니까”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같은 날 민갑룡 경찰청장 역시 “(검찰) 수사 지휘권은 반드시 폐지돼야 합니다. 경찰 수사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 동안 온 국민께서 다 아시다시피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됐습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검ㆍ경의 반목과 정부ㆍ여당의 일방적인 개혁 방안을 보면, 결국 권한을 어느 기관에 줄 것인지가 문제인 듯하다. 수사’권’을 쪼개 검찰과 경찰에 나눠 주고, ‘권’을 많이 가진 검찰 힘을 빼기 위해 공수처를 둔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민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수사에서 중요한 건 범죄자들에게 응분의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다. 결국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 서비스를 하는 수사기관이 서로 손들고 서비스하겠다고 싸우는 셈이다. 봉사가 아닌 권한으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

사법시스템이 어떻고, 누가 누구를 통제해야 하며 누가 수사를 끝낼 수 있는지 하는 복잡한 내용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야 할 부분이다. ‘서비스(役)’를 받는 당사자인 국민을 고려하지 않고 ‘권(權)’으로 여기고 다투는 건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뿐이다.

안아람 사회부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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