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ㆍ독일, 이란과 교역 유지 위해
EU 내 ‘지불 채널’ 설치 추진
이란 국영 항공사도 운항 지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공언했던 대(對)이란 전면 제재가 발효된 지 한 달도 안 돼 벌써부터 구멍이 뚫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양대 강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이란과의 교역 유지를 위한 EU 내 ‘지불 채널(Payments Channel)’ 설치를 주도,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를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실제로 이란 국영 이란항공은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오른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럽 등에 국제선 노선을 운항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WSJ가 국적을 특정하지 않고 인용한 고위급 외교관들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은 이란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제재망 회피를 위한 우회로에 해당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의 개설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이란의 유럽행 원유ㆍ천연가스 수출, 유럽산 제품 수입 등에 수반되는 양 측의 금융 거래에 활용할 새 통로를 만들자는 것으로, 예컨대 프랑스 영토에 법인을 설치하면 독일 관리들이 운영을 맡는 식이다. 영국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구상은 앞서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ㆍ안보 고위대표가 지난 9월 이미 밝힌 바 있다. 당시 EU가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에 지불 채널 설치 의사를 각각 타진했으나, 두 나라는 ‘경제적 악영향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미국의 으름장에 결국 포기했다. 그러자 사실상 EU를 이끄는 양대 축인 프랑스와 독일이 총대를 메고 전면에 나선 것이다. WSJ는 “(미국의 탈퇴로 휴지조각이 될 위험에 처한) 2015년 이란 핵 합의를 지켜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유럽 국가들은 핵 합의 유지가 안보이익에 도움 된다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지불 채널 법인을 ‘유럽 국가들의 공동 소유’ 형태로 설립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들의 불이익 소지, 미국의 특정 국가 겨냥 제재 등을 한꺼번에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12개 이상의 유럽 국가를 상대로 설득에 나선 가운데, 잠재적으로는 중국, 러시아 등의 동참도 희망하고 있다. 외교관들은 “이달 말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유럽 지도자들이 이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법인의 공식 출범은 내년 초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WSJ에 전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일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란항공이 1주일 후인 12일, 파리(프랑스)와 런던(영국), 함부르크(독일), 도하(카타르) 등에 총 13편의 국제선 항공기를 착륙시킨 사실까지 드러났다. 항공기 경로 추적 웹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 24’가 분석한 이 결과는 제재 이전인 지난달 29일(11편)보다도 오히려 더 늘어난 것이다. WSJ는 “이란항공 제재에 실질적으로 동참하는 국가가 별로 없다는 것으로, 이란을 국제무대에서 고립시키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도전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원유 수출은 종전에 비해 3분의 1 이상 줄었고, 화폐(리알화) 가치도 폭락하는 등 이란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많은 제재 전문가들은 “이란항공 문제는 다른 나라들의 반대를 전혀 개의치 않는 트럼프 정부의 ‘최대 압박’ 전략의 허점을 잘 보여준다”면서 “해외의 정치적 정서가 미국의 제재 회피 시도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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