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권익위가 11월 회의를 지난 21일 본사 17층 대회의실에서 열어 최근 지면 보도의 개선점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인 배정근 위원장과 권선희 박홍빈 신현호 이상민 위원과 간사인 진성훈 오피니언 에디터, 이충재 수석논설위원이 참석했다.
신현호
11월 21일자 13면 ‘소국 몰디브가 대국 중국ㆍ인도 흔들다’는 특파원 기사이고, 같은 면의 ‘이스라엘 연정 혼란 지속 美 중동평화 계획에도 타격’은 국제부 기자의 기사이다. 특파원과 국내 기자의 기사가 모두 외국 언론을 인용하고 있어, 그 형식이 거의 같다. 외신 요약은 국내에 있는 기자에게 맡기고, 현지에 가 있는 특파원은 가급적 현장을 직접 가면 좋겠다. 중요 이슈에 대해 외신 기사를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굳이 국내 기자보다 2배 이상의 비용을 들여 특파원을 보내는 이유가 뭔가. 예를 들어 ‘BTS가 일본서 공연을 한다’ ‘새로운 편의점이 도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등등의 기사는 특파원이 공연장, 편의점 등 현장을 직접 가서 기사를 썼으면 한다. 우리 기자가 미국에 간다고 해서 국무장관, 재무장관이 인터뷰해주진 않는다. 그런 부분은 주요 외신을 인용하더라도, 현지에 있는 누군가와 인터뷰하는 노력은 해줬으면 한다. BTS 공연장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 인터뷰를 하는 것은 사소할지라도 독자에 대한 서비스다.
배정근 이상민
‘소국 몰디브가 대국 중국ㆍ인도 흔들다’ 기사는 어디까지가 인용인지 잘 모르겠다. 특파원은 현지에 나가 있으면 현장을 취재하고 독자적인 기획 취재를 많이 해야 한다. 현장을 뛰는 기사를 많이 썼으면 좋겠다.
신현호
파이낸셜타임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BBC까지 3개의 언론을 요약 정리했다. 더 심한 것도 있는데 A신문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으로 번역해 인용처리를 했다. 경제, 사회 같은 큰 이슈가 아닌 조금 덜 거창한 이슈라도 특파원이 직접 찾아가는 기사가 있으면 한다.
배정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특파원만이 현지 뉴스를 모니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국내에서도 전 세계 뉴스를 다 볼 수 있다. 특파원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현지의 어려운 제약들도 많겠지만 보도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권선희
11월 5일자 4면 이언주 의원을 인터뷰한 ‘보수색 짙은 정치인으로 변신 이유? 민주당 장악한 운동권에 거부감 때문’은 가장 뜨거운 기사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반응이 엄청났는데 지면 기사는 화제나 이슈성에 비해 작았다. 기자는 질문해야 한다는 본연의 역할을 시의 적절하게 잘 했다고 생각한다. 11월 16일자 1면 ‘J노믹스 운용 외고집, 與원로들 쓴소리’에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의 발언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이 내용은 하루 전날 CBS방송 ‘김현정의 뉴스쇼’가 김 명예교수를 인터뷰한 것인데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했다. 11월 20일 ‘러시아에서 고려인 아이 안 괴롭혀…한국 학교 교육 잘못’에서도 CBS가 희생된 중학생 어머니의의 지인을 인터뷰한 것을 역시 출처 공개 없이 썼다. 이렇게 출처도 안 밝히고 가져다 써도 되는지 궁금하다.
배정근
취재원을 인용하는 데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 10개 신문사를 분석해봤는데 한국일보가 익명 취재원이 가장 많았다. 기자들이 다른 언론사를 인용하는 것에 부담감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당당하게 밝히는 게 독자들에게 정직한 신문이란 호감을 줄 수 있다. 11월 16일자 10면 ‘청년인턴 뽑아놓고 나 몰라라’에는 취재원이 4명 등장하는데 모두 익명이고, 그 표기 방법마저 A(25)씨, 조모(28)씨, 정모(27)씨, 공공기관 관계자로 통일되지 않았다. 보통 행정부처 기사에 언급되는 취재원은 대부분 ○○○부 관계자, 부처의 관계자다.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게 정상이고, 실명을 밝히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처럼 하고 있다.
권선희
11월 14일자 16면 ‘까칠한 Talk: 日, 에미넘 가사는 되고 BTS 셔츠는 왜 안되나’는 잘 짚었다. 온라인에서는 BTS를 영웅시하고 일본이 잘못 건드렸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사는 ‘원폭은 반인륜적 전쟁 수단이다. 누군가의 패션이 돼선 안 된다’ ‘감정적 대응을 지양해야 한다’며 냉정하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13일자 8면 ‘기자의 눈: BTS로 한일 갈등 증폭 노려선 안돼’도 같은 맥락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기사에서 한국일보는 한일 관계를 염려하는 제목을 주로 다뤘다. 판결에 대해 지적할 수 있고 염려할 수도 있으나, ‘파탄’ ‘우려’ ‘곤혹’ 등의 제목을 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다.
이상민
‘방방곡곡 노포 기행’ 기획은 재미가 있다. 이런 기획은 취재원을 잘 발굴하고 기사를 잘 구성하지 않으면 지루해진다. 독자 입장에서 5G보도가 혼란스럽다. 11월 8일자에는 LG유플러스를, 9일자와 15일자에는 SKT를 긍정적으로 소개했다. 10월 30일자 28면 ‘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당장 시급한 건 교사 보조인력 예산’은 필자가 기자 출신이다. 발달장애 8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시각에서 특수교육의 문제점, 장애인 가족의 어려움을 다룬 좋은 기획이다. 11월 1일자 6면 ‘조현병, 공존의 질병으로’도 시기에 맞춘 좋은 기획이었다.
배정근
신문이 차별화할 수 있는 기사가 인터뷰다. 기자의 가공을 크게 거치지 않고 그 사람만의 훌륭한 의견이나 목소리를 보여줄 수 있어 주목도가 높다. 사람들면에 꾸준히 인터뷰 기사가 나오는 데 현악기 장인 이성열씨, 맥도날드 배달원 박정훈씨, 사카이 나오키 미국 코넬대 교수 인터뷰는 굉장히 좋았다. ‘논ㆍ담’에서도 논설위원들이 와이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앞으로도 장관이나 정치인 같은 뉴스메이커보다 새로운 삶,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한국일보는 집담회 형식의 기사를 자주 쓴다. ‘까칠한 Talk’도 기자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현안에 대해서 그 이슈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생생한 현실 이야기를 해주고 다양한 관점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11월 17일자 2면 ‘로스쿨 사람들이 말하는 로스쿨의 그늘’은 로스쿨에 관련된 사람 5명이 나와 집담회를 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로스쿨 교수를 하는 사람, 변호사 시험에서 다섯 번이나 떨어진 학생, 로스쿨 학생협의회장, 지방대 출신 로스쿨 변호사, 법학박사가 다양한 각도에서 로스쿨 문제를 보여줬다. 이런 집담회 스타일의 기사를 많이 개발했으면 한다.
11월 13일자에 좋은 기사가 유독 많았다. 1면 ‘방치된 포항의 1년…바람만 불면 무너질까 겁나’는 지진 1년 후의 포항을 르포로 다뤘다. 시민들이 아직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도 이야기했으면 좋았겠다. 2면 ‘86세대는 가라…민주당 응칠의 도전 시작됐다’는 정당 행사에 세대교체 의미를 부여해 흥미로운 기획기사로 만들어냈다. 3면 ‘이사부터 감사까지 줄곧 숙명여고 출신 끼리끼리 사학 폐쇄성이 사태 더 키워’는 한국일보가 저(사학의 폐쇄성) 문제를 먼저 제기했다.
박홍빈
조선일보와 비교해서 한국일보의 가장 큰 특징, 강점은 기획기사다. 지면 수, 기사 양이 적은데도 한국일보는 긴 호흡을 가지고 분석하는 기획기사를 굉장히 잘 쓴다. 한국일보에서만 볼 수 있는 사회 소수자를 다루는 기획 기사도 많았다. 문화면은 조선일보가 트렌드를 설명하거나 다양한 현장의 이야기를 묶어 현상을 분석하는 기사가 많았다.
기사의 내용이 혼란스런 경우가 있다. 10월 17일자 3면 ‘수소차 충전ㆍ원격 진료… 규제ㆍ기득권 탓에 막힌 혁신 서비스’에는 '도시 내 숙박공유'와 에어비앤비를 같은 개념으로 모호하게 사용해 내국인의 에어비앤비 이용을 불법으로 오해토록 했다. 10면 ‘유학생 내쫓는 멋대로 취업비자’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취업 비자를 내줄 때 객관적인 조건과 기준이 없다는 맥락의 기사인데, 사례 소개와 통계 비교가 충실하지 않다. 11면 ‘56세 택시기사의 슬픈 기록’은 기사를 읽고 나서도 궁금증이 남았다. 사납금 폐지를 위해 법을 개정했으나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는데 어떤 문제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10월 18일자 25면 ‘취재파일: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의 이중잣대’는 길지 않은 기사임에도 팩트로 꽉 찬 기사였다. 기사를 보고 ‘취재파일’ 코너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15면 ‘아무데서나 찰칵 괜찮지 않습니다’는 왼쪽 아래에 제목을 배치, 독자 시선의 흐름을 벗어나 아쉬웠다. 22면 ‘폭력ㆍ액션 없어도… 범죄 영화 속 형사의 본질을 그리고 싶었다’는 영화 ‘암수살인’의 김태균 감독을 인터뷰했다. ‘암수살인’은 유족 동의를 받지 않고 제작돼 엄청 시끄러웠는데, 기사에서 아예 그 이슈를 다루지 않았다.
권선희
11월 6일자 1면 ‘민의 왜곡 그만! 선거개혁 마지막 기회’는 충분히 다룰 만한 이슈인데 ‘민의 왜곡’이라는 표현이 걸린다. 지금의 선거제도가 불합리한 면은 분명 있지만 민의 왜곡이라고 할 정도인가. 11월 15일자 18면 ‘월 500만원 ‘아찔한 유혹’…배달기사의 목숨 건 질주’에서 제목만 보면 배달기사가 월 500만원까지 버는 것 같다. 정작 기사에는 월 500만원은 불가능하다고 나온다. 10월 23일자 10면 ‘올 들어 6번째…털면 털리는 새마을금고’에서 ‘털면 털리는’ 는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제목이었다. (언론 기사의)오탈자가 이제 독자들에게 익숙해져, 독자가 맥락을 상상하고 문장을 만들어야 할 정도다. 모바일과 인터넷에 오탈자, 띄어쓰기 틀린 부분이 종종 있다.
정리=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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