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판단 무시 징계 반복해
동구여중 10개월째 교장 공백

“비리 인사는 교육청이 징계하라 해도 안 하고, 존경 받는 선생님은 징계하지 말라 해도 해임하는 게 모두 ‘합법’이라는 게 말이 되나요?”
10개월째 교장공백사태를 겪고 있는 서울 동구여중의 학생ㆍ학부모ㆍ교사들이 사립학교법인의 징계권 남용을 용인하는 사립학교법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자율성’을 빌미로 교육적 책임보다 사적 판단을 앞세우는 사학에 제동을 걸기로 한 것이다.
동구여중 학부모회는 사립학교법의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30일 헌법재판소에 낼 계획이라고 27일 밝혔다. 김경아 부회장은 “교육청이 교장 직위해제가 부당하다고 판단했지만 동구학원은 이를 무시하고 징계를 반복해 왔다”며 “교장공백으로 헌법 상 기본권인 교육권이 침해됐다고 보고 청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청구인단에는 학부모 199명과 전교생, 교사 일부가 참여한다.
동구여중 사태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구학원은 안종훈 동구마케팅고 교사의 공익제보로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를 받았다. 횡령 등 17건의 비위 사실이 적발됐고 이사 전원이 물러났다. 이후 교육당국은 관선이사를 파견해 정상화를 유도하는 한편, 동구여중은 교장공모제를 거쳐 지난해 5월 평교사였던 오환태 교사를 교장으로 임용했다. 하지만 재단이 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복귀한 구 이사들은 지난 2월 오 교장을 해임했다. 교원소청심사위가 재단 처분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오 교장은 지난 9월 복귀했지만 재단은 다시 직위해제 했다.
학교 구성원들은 사학법인의 자체 징계결정에 대해 교육청이 감독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 입법부작위라 보고 있다. 법인의 징계근거나 수위가 부적절한지에 대해 교육당국이 관여할 수 없는 폐쇄적 구조라 보복성 징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원이 소청심사로 지위를 회복하더라도 법인이 이를 무시하고 다시 징계를 반복하면 소용없다. 오 교장과 안 교사 모두 이로 인해 수 차례 파면 및 직위해제를 당했다.
사학법인이 교육청의 징계요구를 무시해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는 현행 규정(제62조의 2)도 헌법소원대상이다. 이는 사학 비리를 용인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학교 구성원들은 헌법소원이 학교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 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년간 재단에 수 차례 학교 정상화와 오 교장의 복직을 요구했고, 시교육청ㆍ국회의원을 찾아 다니며 해결책을 강구했다. 지난 8월에는 학생 193명이 체험학습의 형식으로 서울시의회와 교육청을 방문해 오 교장 복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태는 제자리다. 오 교장은 “혁신학교 과정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내년에도 재신청하려 했지만 교장 공석으로 없던 일이 되는 등 여러모로 교육권이 침해됐다”고 말했다.
만약 이번 헌법소원이 인용될 경우 정부는 동구학원이나 서울미술고처럼 사학비리로 고발된 교육기관을 감독할 수 있게 된다. 사립유치원 회계비리나 숙명여고 같은 사립고 내신비리, 이른바 ‘스쿨미투’ 등에 대해서도 실속 있는 제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구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는 “청구내용이 사학 자율성이라는 법익과는 충돌하지만, 사립학교 재정 대부분이 국고로 지원되기 때문에 공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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