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ㆍ연금 개혁 등으로
푸틴 지지율 급격하게 하락
2014년 크림반도 분쟁 때처럼
강한 외교로 지지 반전 노림수
러시아가 돌연 우크라이나 함정을 나포하는 초강수를 두자 국제사회가 진의를 파악하는데 분주하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고조된 양국간 긴장관계에도 불구, 그 동안 직접 충돌을 자제해온 탓이다. 유엔, 미국, 유럽연합(EU) 제재로 러시아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지만 중국과 밀월관계를 과시하며 나름 영향력을 발휘해오던 터라 굳이 왜 이 시점에 비난을 자초하며 군사행동에 나섰는지를 둘러싼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케르치 해협은 흑해와 아조프해를 잇는 길목이다. 러시아는 5월 러시아 본토 크라스노다르 지역과 해협을 잇는 크림대교를 건설한 이후 이곳을 영해라고 주장해왔지만 지난 6개월간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국제법상 군함은 무해통항권이 보장된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6일(현지시간) 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가 벌인 무모한 긴장 조장행위는 법을 따르는 문명 국가의 행동이 아니다”면서 “합법적인 케르치 해협 통과를 방해하는 것은 국제법에 어긋나는 오만한 행동”이라고 규탄한 것도 그 때문이다.
명분이 약한 러시아는 대외적으로 톤을 낮추는 모양새다. 타스통신은 27일 크렘린궁 성명을 인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당국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 행사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즉각 계엄령 선포에 나서며 강력 반발하자 사태가 확산되지 않도록 러시아에 우호적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나서달라는 것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우크라이나가 먼저 영해를 침범해 압박한 만큼 우리는 책임질 것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4년 전 크림반도 분쟁 때와 달리 국제사회와 정면으로 맞붙지 않겠다는 기류가 짙다.
반대로 시선을 내부로 돌리면 러시아가 도발에 나선 좀더 뚜렷한 동기를 찾을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의 지지율이 바닥인 시점에서 안보결집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부에 적을 만들어 국내 위기를 타개하는 방식이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66%까지 떨어졌다. 다른 나라 정상에 비하면 여전히 높지만 최근 수개월간 20%포인트 가까이 추락했다. 침체된 경기가 좀체 출구를 찾지 못하는데다 ‘오래 내고 늦게 받는’ 연금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겹친 탓이다. 지난달 지방선거 결과 또한 충격적이다. 지지층 일부가 등을 돌리면서 전통적 강세지역인 블라디미르주와 하바롭스크주 등 4곳에서 야당에게 자리를 내주거나 선거부정으로 재선거를 치렀다. 집권 통합러시아당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당초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공교롭게도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당시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60%선에서 허우적대다가 군사적 충돌로 위기감이 커지자 일약 80%대로 급상승했다. WP는 “러시아 경제가 처한 어려운 여건을 감안하면 호전적인 대외정책이야말로 일거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에 적대적인 서구 국가의 의중을 떠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EU에서 가장 러시아에 강경한 영국은 브렉시트(BrexitㆍEU 탈퇴) 소용돌이에 휘말려 크림반도에 개입할 여력이 없고, 미국은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돼 러시아를 향해 온전히 힘을 쓸 수 없는 처지다. 앞으로도 크림반도에서는 언제든 무력충돌이 재발될 수 있는 만큼 러시아는 차제에 국제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본 뒤에 사태를 수습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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