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정폭력 방지대책 발표
폐지요구 ‘가정의 평화와 안정’
가정폭력처벌법 목적 조항
반의사불벌죄 등 그대로 남아
앞으로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응급조치가 명문화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어기면 징역형까지 받는 등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내놓은 가정폭력 대책이다. 그러나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으로 제시한 부분이나 반의사불벌죄 등 그동안 꾸준히 폐기해야 한다고 지적된 조항은 그대로 남아, ‘반보 진전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성가족부가 27일 발표한 관계부처 합동 가정폭력 방지대책에 따르면 접근금지를 포함한 임시조치를 위반한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기존 과태료 처분이 아닌 ‘징역 또는 벌금’의 형사처벌을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가정폭력 사건 현장에서 경찰관이 실시하는 ‘응급조치’ 유형에 형사소송법(제212조)에 따른 현행범 체포를 직접 명시해, 보다 적극적인 경찰의 현장 대응을 유도키로 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자녀를 만나며 발생하는 2차 범죄를 막기 위해 피해자 보호명령 유형에 ‘자녀면접권 제한’을 추가하고, 피해자와 법정대리인 외 가정구성원도 접근금지 등의 긴급임시조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상습·흉기사범 등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 후 4년 간 6번이나 전 남편을 피해 이사를 다녔고 접근금지명령도 시행됐지만 결국 피해자가 살해 당한 강서구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가해자 처벌뿐 아니라 그동안 미온적이었던 경찰의 현장대응도 강화한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여성계 등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해 온 핵심 쟁점이 빠졌다며 ‘반보 전진에 그쳤다’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 조항에 대한 개정 요구가 큰데도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해당 조항에는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이 법의 목적으로 명시돼, 가해자 처벌이나 분리보다 가정을 유지하는 것을 더 중시함으로써 피해자 인권을 등한시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해당 조항은 가정폭력 범죄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처리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핵심 가치”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가장 가까운 가족이 가해자이므로 ‘처벌해 달라’고 말하기 어렵고 지속적인 폭력을 통해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가정폭력의 특성상,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방식(반의사불벌죄)은 적합하지 않다는 현행법의 문제점도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관련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 받는 제도는 폐지가 요구돼 왔지만 ‘폭력의 정도가 심하고 재범 우려가 높으면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수준으로 모호하게 정리됐다.
김현원 여가부 권익보호과장은 “목적 조항 개정 등은 이번 대책 마련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고, 앞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여러 개정안을 보면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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