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플랫폼 시대다.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플랫폼 기업은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 1개에서 10년 새 7개로 크게 늘어났다. 사람들은 우버로 차를 불러 이동하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여행지의 숙소를 예약한다. 그런데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빌려줄 차 한 대, 방 한 칸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사람들과 남는 차량, 숙소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일 뿐이다.
*음영은 플랫폼 기업
플랫폼은 말 그대로 기차역의 플랫폼을 뜻한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는 열차를 탄다. 최근 이야기되고 있는 플랫폼은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스스로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하는 가상의 공간을 뜻한다. 휴대폰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던 애플이 노키아, 블랙베리, 모토로라 등 유수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선 원동력도 ‘거래의 장’인 앱스토어를 내세워 플랫폼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과거 플랫폼이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데 그쳤다면 최근 플랫폼은 네트워크 효과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는 참여자 수가 늘어날수록 각자에게 더 많은 가치가 돌아가고 플랫폼 자체의 가치 또한 상승한다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카카오톡을 가장 많이 쓰는 이유는 다른 메신저보다 기능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이미 많은 사용자가 있기 때문에 그 네트워크를 사용할 때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멧커프의 법칙에 따르면 네트워크의 효용성은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멧커프의 법칙: 네트워크 효과>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은 기존의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1990년대 미국 최대의 DVD 대여점 블록버스터에 연체요금 40달러를 낸 계기로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를 창업했다. 초기에는 월정액을 받고 DVD를 무제한 빌려주는 사업이었으나 2000년대 중반 온라인 스트리밍 모델로 전환했다. 넷플릭스에 밀려 블록버스터의 수익성은 악화했고, 2010년 파산 신청을 했다. 전성기 때 9,000여개에 달했던 매장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배달앱인 ‘배달의 민족’은 음식 전단지를 대신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 요리나 피자, 치킨을 주문하려면 전단지를 뒤적거려야 했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의 배달앱을 들여다본다. 스마트폰 결제가 활성화되고 소비자들이 직접 주문해 먹은 음식에 대한 평가를 남기면서 배달앱 사용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제 플랫폼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지능화하고 있다. 구글은 2016년 3월 ‘머신러닝 플랫폼(Machine Learning Platform)’을 공개했다. 음성을 인식해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이미지를 분석해 사진 속 상황을 판별해낸다. 고도의 번역 기능으로 언어간 장벽까지 허물고 있다. 이런 일을 구글의 플랫폼이 대신 처리해주는 덕분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좀더 편하게 서비스 개발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2016년 4월 미래 10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인공지능(AI)을 핵심기술로 꼽았다. 사용자들의 사회관계망(Social Network) 정보 확보에 집중해왔던 페이스북은 AI로 개별 사용자들의 성향과 특성을 유추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일례로 페이스북은 게시물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종류를 기존 ‘좋아요’에서 ‘기쁨’ ‘슬픔’ 등 6종류로 세분화해 특정 사물과 상황에 대한 사용자들의 감정을 보다 세분화해 축적할 수 있게 됐다. 이를 AI 머신러닝에 적용한 것인 챗봇(Chatbot)인데 사용자의 상황과 선호도를 정교하게 분석해 정보 검색, 쇼핑, 예약 등 서비스에서 최적의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항공, 에너지, 헬스케어, 제조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오랜 사업 경험을 갖고 있는 GE는 산업용 클라우드 플랫폼인 ‘프리딕스 플랫폼’을 발표했다. GE는 프리딕스를 자사의 500개 공장에 2년간 시범 적용해 6조원(추정치)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검증된 내부 사례를 활용해 GE는 인텔, 액센추어, 소프트뱅크, 타타 등 30여개 고객사를 확보했고, 여기서 얻은 정보를 다시 머신러닝과 딥러닝으로 학습해 프리딕스를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글, 페이스북, GE 같이 세계적인 대기업들만 플랫폼 사업을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아이템 만으로 승부를 걸었다.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시장에 플랫폼을 만들어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관건은 속도다. 향후 AI 플랫폼 경쟁은 시장에 먼저 진출해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딥러닝과 같은 기계학습에 기반한 AI 플랫폼은 방대한 데이터로 학습하면서 성능이 고도화되기 때문에 초기에 많은 참여자를 자신의 생태계로 끌어 모으는 선두주자와 후발주자의 성능 차이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대기업과 달리 의사결정이 빠르고, 고객의 요구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스타트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무실을 얻을 돈이 없어 동업자의 집 한켠에서 시작했지만 창업 10년 만에 기업 가치 310억 달러,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 있는 유니콘 스타트업이 된 에어비앤비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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