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농단에 연루된 현직 법관의 탄핵소추를 촉구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 판사들의 찬반 공방이 확산되고 있다. “동료를 탄핵한 법관회의를 탄핵해 달라”는 부장판사의 글, “의견수렴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는 옹호론, “표결에 대한 입장을 바꿀 수 없다면 토론이 있어야 할 의미가 사라진다”는 반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법관대표회의 대표로 19일 회의에 참석했던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6일 법원 내부망에 “탄핵안건 토론 과정을 지켜보다 주심사건 진행을 위해 자리를 떴다가 1표 차로 탄핵안건이 가결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책감이 들었다”면서 글을 올렸다.
서 부장판사는 “이번 탄핵결의에서 법관회의 대표들 대부분은 사전에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법관 징계대상자 13명 명단이 언론에 공개됐는데, 행청처에 근무할 때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 젊은 판사님들도 있다”면서 “이번 결의로 인해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젊은 동료 판사가 탄핵소추 대상으로 거론된다는 것이 두렵다”고 적었다. 그는 “그간 정치권의 결정이 엄정한 비교형량 보다 예단이나 지지자들의 요구에 따라 좌우됐다”고도 했다.
앞서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23일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탄핵안건 의결은 정당성 없는 정치적 행위였다”면서 전체 법관 직접 투표 내지 설문조사를 실시해 ‘법관회의 탄핵’에 나서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차성안 수원지법 판사는 26일 “3천명 판사를 인간설문기로 만들어 투표해 정하자는 대안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대안”이라면서 “장시간의 열린 현장토론과정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김 부장판사의 의견을 반박했다. 이에 차 판사의 글에 간접적으로 언급된 서 부장판사가 답하며 재반박에 나선 형국이다.
주로 지법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들을 중심으로 탄핵안건 의결과정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김홍기 부산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는 “법관을 대표하여 결의하려면 적어도 법관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이 있었어야 했다”면서 “이번 결의는 절차상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이나 논의는 법관회의를 통해서 하고, 최종 결론은 법관 전체 투표 등으로 직접 결정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라면서 “똑똑한 우리가 하면 따라오면 된다고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 지난 일이지 않냐”고도 했다. 서울행정법원장을 역임한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재판독립침해 행위에 대한 법관회의 의결 내용은 재판 문제도, 사법행정의 문제도 아니다”면서 “대법원장이 아닌 국회에 제시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및 수원지법의 일부 평판사도 “법원의 대표들이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도 알지 못하고, 회의 후에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구성원들에게 설명을 해줬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면서 결의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대법원 홍보심의관을 지낸 이중표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의결 과정에 대한 속기록, 표결 명단을 법관들에게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이 법관회의의 의무”라고 말했다.
반면 “법관회의에 대한 공격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사들의 반박도 이어졌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인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는 “토론을 전제로 하는 회의체 기구에서 미리 표결에 대한 입장이 정해지고 그 입장이 불변해야 한다고 하면 토론이 있어야 할 의미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면서 “대표들이 소속 법관들의 의견수렴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해서 대의제 기구가 아닌 간부회의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회의록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의결사항만을 두고 비판을 하는 것은 좀 섣부르지 않냐”면서 “문제의 원인은 대표들보다는 의견제출을 꺼리는 일선 법관들에게 더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부장판사의 ‘언론플레이’를 문제삼는 반응도 나왔다. 대전지법 한 판사는 “사법파동에 이르게 한 권력이 나쁜 것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판사들이 분연히 일어난 것”이라면서 “법관들이 조직의 잘못에 대해 고백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처분을 함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헌법위반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부장판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법관회의를 회의의 기본원칙조차 무시하는 회의로 매도하고 있다”면서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기존 법리에 부합하지도 않는 인터뷰하지 마시고 공적 토론의 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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