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지막 황제’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등을 만든 세계 영화계 거물인 이탈리아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베르톨루치가 로마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향년 77세.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 영화를 넘어서 세계 영화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감독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영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린 비토리오 데시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등을 잇는 대가 중 한 명으로 손꼽혔다.
베르톨루치는 유명 시인 아틸리오 베르톨루치의 아들로 1941년 3월 16일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났다. 베르톨루치는 어린 시절 아버지처럼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청년기를 거치며 영화감독으로 장래희망을 바꿨다. 로마대학 재학시절 유명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아카토네’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1962년 ‘냉혹한 학살자’로 데뷔한 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마지막 황제'(1987), '1900년'(1976), '몽상가들'(2003), ’순응자’(1970), ‘리틀 붓다’(1993) 등을 연출해 거장 반열에 올랐다. 2007년에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특별상인 명예황금사자상을, 2011년엔 칸국제영화제 명예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마지막 황제'는 1988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9개 부문을 휩쓸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푸이의 생애를 다뤄 전 세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격동기 중국의 모습을 수려한 화면에 담은 ‘마지막 황제’는 중국 자금성에서 첫 촬영한 서양 영화로도 유명하다.
공공연히 공산주의자임을 천명한 베르톨루치는 ‘순응자’와 ‘1900’처럼 활동 초기엔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다룬 영화들을 만들어 주목받았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몽상가들’처럼 성과 정치를 결합시킨 영화들로도 화제를 모았다. 정치적ㆍ사회적 곤경에 처한 인물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베르톨루치의 이름은 만년에 성추문으로 얼룩졌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찍을 때 여성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의 동의를 받지 않고 마리아가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촬영한 사실을 2013년 고백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베르톨루치는 2016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상대역인 말론 브랜도와는 성폭행 장면 촬영을 미리 상의했다. 마리아가 배우가 아니라 진짜 여자처럼 수치스러워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원하는 걸 얻으려면 완벽하게 자유로워져야 한다. 죄책감은 느끼지만 후회하진 않는다”고 덧붙여 다시 비난을 샀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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