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적극 보상 검토” 밝혔지만 통신사 배상책임 인정 범위 좁아
가입자 1개월 요금 감면 조치도 피해 지역 거주자 중심 보상
서울 은평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지난 24일 매장 결제단말기가 ‘먹통’이 돼 온 종일 애를 먹었다. 김씨는 “일일이 카드 정보를 적어 카드사에 전화승인을 받느라 손님 한 명 계산하는데 20분 넘게 걸렸다”며 “그나마 이동통신사는 KT가 아니어서 전화 승인이라도 할 수 있었지, 옆 가게 사장님은 휴대폰도 안 터져 현금 없이 온 손님을 다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는 김모(29)씨는 24일부터 25일 오전까지 집 안에서 TV와 인터넷, 전화가 모두 끊기는 경험을 했다. 나중에 뉴스를 보고 KT 건물 화재 때문에 일부 지역이 피해를 보았다는 걸 알았지만, 어리둥절했다. 그는 “화재 난 건물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해 보상도 그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는데, 분명 피해를 본 우리 동네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며 “확인하고 싶어 KT에 전화했지만, 상담 통화도 안돼 답답하다”고 전했다.
26일 KT에 따르면,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피해를 입은 고객을 위해 자체적으로 마련한 보상안을 지난 25일 발표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내놓은 보상안에는 KT 유무선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입자만 대상에 포함됐고, ‘이동성’이 핵심인 무선 서비스 관련 피해 보상은 아현지사 관할지역 거주자로만 범위를 한정했기 때문이다.
통신장애로 주말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나 대리기사, 퀵서비스 등이 입은 ‘간접피해’가 금전적으로 훨씬 클 텐데, 보상 방식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훨씬 늘어나지만, 현재 제도로는 사실상 ‘KT의 보상 의지’에 달려 있어 구체적 보상 체계 마련까지 상당 기간 난항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규모 파악도 못 한 채 내놓은 설익은 보상안
KT는 피해를 입은 가입자들에게 요금 1개월 치를 감면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매설된 케이블로 서비스를 받는 유선의 경우 고정 지역이기 때문에 피해 규모 및 보상금 산정에 별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이동하면서 쓰는 무선 서비스다. KT는 피해지역(중구ㆍ용산구ㆍ서대문구ㆍ마포구ㆍ은평구ㆍ경기도 일부) 거주자 중심으로 보상을 진행하겠다고만 발표했다. KT 설명대로라면, 주말 동안 피해 지역으로 이동해 머물다 피해를 본 경우, 피해 지역 인근 지역이라 장애 영향을 받은 경우 등은 보상받지 못할 수도 있다.
KT 관계자는 “주소지가 피해지역이 아니더라도 주요 생활 반경이 해당 지역이라면 보상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는 있지만, 피해 지역을 지나치면서 단시간 장애를 겪은 경우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구체적 보상 대상 산정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소상공인 등 간접피해 실질적 보상도 요원
더 큰 문제는 소상공인들이 입은 영업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이다. KT는 적극적인 보상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KT에 그럴 의무는 없다. 통신 장애로 인한 간접피해 관련 구제와 배상은 통신사와 이용자가 맺는 계약인 이용약관에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법원도 통신장애로 인한 이통사의 영업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4년 3월 접속 불량으로 인한 6시간여의 통신장애가 발생하자 대리운전 기사들은 영업상 피해가 발생했다며 SK텔레콤을 상대로 10만~20만원씩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원고들(피해자)과 피고(SK텔레콤)는 이동통신서비스 이용계약을 체결하면서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해당 예정액에 통상손해(당연히 예상되는 손해)와 특별손해(특별한 사유로 인해 발생한 손해)가 다 포함됐다”고 판단했다. 당시 SK텔레콤은 기본료의 10배를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했는데, 여기에 특별손해에 해당하는 영업상 손해에 대한 배상까지 포함됐다고 본 것이다.
이번에 KT가 내놓은 한 달 요금 감면도 KT 약관상 기준(1시간당 요금의 6배)을 훨씬 웃돌아, 추후 간접피해를 이유로 소송을 걸어도 승소할 가능성은 작다.
다만, SK텔레콤 사건에서의 통신장애와 달리 KT는 화재로 인한 사고인 만큼 경우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김남국 변호사는 “화재 원인 등을 살펴야겠지만, 관리 소홀 등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어 만에 하나 수사 과정에서 과실이 인정되면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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