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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인스 서킷

입력
2018.11.26 18:00
수정
2018.11.27 15:4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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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2심 연방항소법원 명칭엔 ‘서킷(circuit∙순회)’이 붙는다. 과거 넓은 관할 지역을 돌며 재판하는 순회재판에서 유래했다. 13개 연방항소법원 중 ‘나인스 서킷’으로 불리는 제9순회항소법원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데, 종종 반향 큰 진보적 판결로 유명하다. 정치적으로 동부가 중심인 미국에서 ‘나인스 서킷’은 진보의 외곽으로 불릴 정도다.

□ 미국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하느님 아래 하나의 나라’라는 표현 중 ‘하느님 아래(under God)’가 정교분리에 위배된다고 판결하고, 동성결혼을 금지한 캘리포니아주법을 폐지시키기도 했다. 삼성-애플 특허소송에선 삼성 손을 들어주었다. 보스턴과 뉴욕의 제1, 제2 순회항소법원이 더 진보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나인스 서킷’이 민감한 사건을 많이 다뤄 주목도가 더 높다. 관할 지역도 서부 7개 주와 하와이, 알래스카까지 미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 ‘나인스 서킷’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정책 저항의 진앙 역할을 도맡고 있다. 무슬림 입국금지, 미성년 입국자 추방유예(DACA) 폐지, 키스톤 송유관 공사재개 등 트럼프 정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행정 조치에 잇따라 제동을 거는 결정을 내렸다. ‘나인스 서킷’이 진보의 거점이 된 것은 카터 행정부(1977~1980) 때였다. 카터 대통령은 종신직인 23석 중 15석을 진보 판사들로 채웠다. 지금은 29석으로 늘어난 자리에 민주당 정부에서 16명을, 공화당 정부에서 8명을 임명했고, 나머지 5석은 트럼프 정부가 인물을 찾는 중이다. 트럼프 정부는 대통령을 동네북 취급하는 ‘나인스 서킷’의 대통령 임기 내 보수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고민이다. 미국에서 거의 모든 사건의 최종심은 항소심이다.

□ 연방대법원은 5(보수)대 4(진보)로 보수화를 이뤘지만, 연간 100건 안팎의 심리만 한다.최근 중남미 난민 ‘카라반’의 망명 신청을 막는 행정조치가 위법하다는 연방지법 결정에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판사’라고 비판한 것도 항소심을 맡을 ‘나인스 서킷’에 대한 무력감의 표현이다. “오바마 판사는 없다”는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의 지적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나인스 서킷’은 “총체적 재앙”이고 “통제 불능”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갈등이 행정부의 독주를 사법부가 막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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