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제기한 민원과 관련됐다 해도 유치원 측이 교사와의 면담 내용을 동의 없이 녹음해 그대로 전달한 것은 ‘인격권과 사생활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해당 유치원장에게 재발 방지 교육을 권고했다.
26일 인권위에 따르면 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인 A씨는 학부모 B씨로부터 원생에 대한 생활지도가 마음에 안 든다며 교체 요구를 받았다. 이에 유치원 원감 C씨는 올 5월 A씨와 관련 면담을 진행했고 그 과정을 녹음했다. 그리고 정확한 사실을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녹음 파일을 B씨에게 보냈다.
녹음 내용을 들은 B씨로부터 “왜 내게 한 말과 원감에게 한 이야기가 다르냐”고 항의 받은 A씨는 그제서야 면담 내용이 녹음됐고 그 파일이 B씨에게 전달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C씨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C씨는 인권위에 “면담 녹음은 원장 지시에 따른 것으로, 대화자끼리 녹음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상 위법 행위가 아니다”라며 “교사의 생활지도를 문제 삼은 학부모에게 정확한 내용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고, 교사도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 조사 결과, C씨는 면담이 끝난 후 A씨에게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학부모에 전하겠다”는 말을 했을 뿐 녹음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이를 몰랐던 A씨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녹음을 지시했다는 원장도 “주장이 상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사들에게 공식 회의는 녹음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적은 있지만 이것이 대화 모두를 녹음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인권위는 “학부모에게 정확한 사실 전달이 목적이었다 해도, 공익 실현을 위해 필요한 조사나 언론보도를 위한 증거 제출과 같은 음성권 제한의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없다”며 “원감의 행위는 피해자의 인격권과 음성권,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고 결론 내렸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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