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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응답하라 그때 그시절! 식지 않는 레트로 열풍

입력
2018.11.28 04:00
수정
2018.12.11 18:3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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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출시 예정인 나이키 에어조던 11 콩코드 모델. 95년 제작된 농구화를 복원한 모델로, 조던이 야구를 접고 농구선수로 복귀하며 부착한 새 등번호 45번이 뒤축에 표기돼 있다. 나이키코리아 제공
다음달 출시 예정인 나이키 에어조던 11 콩코드 모델. 95년 제작된 농구화를 복원한 모델로, 조던이 야구를 접고 농구선수로 복귀하며 부착한 새 등번호 45번이 뒤축에 표기돼 있다. 나이키코리아 제공
다음달 출시 예정인 나이키 에어조던 11 콩코드 모델. 95년 제작된 농구화를 복원한 모델로, 조던이 야구를 접고 농구선수로 복귀하며 부착한 새 등번호 45번이 뒤축에 표기돼 있다. 나이키코리아 제공
다음달 출시 예정인 나이키 에어조던 11 콩코드 모델. 95년 제작된 농구화를 복원한 모델로, 조던이 야구를 접고 농구선수로 복귀하며 부착한 새 등번호 45번이 뒤축에 표기돼 있다. 나이키코리아 제공

“조기에 구매 하려면 오랜만에 가게 앞에서 캠핑이라도 해야겠어요.”

회사원 김태훈(38ㆍ블로그명 AZK1)씨는 다음달 구입할 농구화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학창 시절 부모님을 졸라 처음 구입했던 농구화 ‘에어조던’의 11번째 모델이 다음달 출시된다. “마이클 조던이 야구를 접고 농구선수로 돌아와 예전 등번호 23번 대신 45번을 달았습니다. 그 때 신던 농구화가 복원돼 다음달 출시됩니다. 올해는 이 농구화 출시만 기다렸는데, 반드시 구매할 겁니다.”

나이키의 에어조던 시리즈는 마이클 조던이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던 시절 신던 농구화로, 당시 모델들이 종종 복원돼 출시되고 있다. 모델마다 한정 수량만 나오고 있어 20만원대의 고가에도 줄을 서서 구입하는 이상 현상까지 벌어진다. 아이돌그룹 빅뱅의 G드래곤, 가수 션, 배우 박해진, 가수 데프콘, 개그맨 김신영 등 연예인들도 에어조던 수집가들이다. 김태훈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인기 모델은 며칠밤을 새우며 기다려야 했다”며 “신발 자체는 쿠션도 좋지 않고 기능이 떨어지지만, 다시 생산해주는 것만으로도 제작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눈부신 기술 발전과 편리함의 시대 속에서도 불편한 ‘레트로’ 제품을 찾으며 추억을 되새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레트로는 영단어 ‘retrospect(회고, 추억)’의 의미처럼 과거를 회상하거나 추억하기 위한 매개체다. 김씨에게도 대표적 레트로 제품인 에어조던 시리즈는 단순한 농구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운동화 수집가인 김태훈씨가 공개한 에어조던 시리즈. 그는 80여 켤레의 에어조던을 보유하고 있다. 김태훈씨 제공
운동화 수집가인 김태훈씨가 공개한 에어조던 시리즈. 그는 80여 켤레의 에어조던을 보유하고 있다. 김태훈씨 제공
운동화 수집가인 김태훈씨가 에어조던에 이어 수집에 들어간 코비 농구화를 안고 있다. 뒤에 보이는 상자에는 김씨가 수집한 운동화가 들어 있다. 김태훈씨 제공
운동화 수집가인 김태훈씨가 에어조던에 이어 수집에 들어간 코비 농구화를 안고 있다. 뒤에 보이는 상자에는 김씨가 수집한 운동화가 들어 있다. 김태훈씨 제공

◇유년 시절 못 가졌던 에어조던과의 추억 쌓기

“조던은 영웅이었고, 조던처럼 멋진 인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향수가 에어조던을 구매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에어조던을 찾는 마니아들에게 조던은 성공을 뜻한다. 에어조던을 신는 조던은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는 영웅이었다. 자유투라인 덩크슛을 위해 점프하는 모습인 신발 뒤축의 ‘점프맨’ 로고처럼, 조던 수집가들도 세상을 활보하고 싶은 것이다.

조던이란 이름에는 미국에서도 성공을 위해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노력한 이들의 ‘월계관’과 같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가난한 흑인 소년들이 조던을 보며 꿈을 키우고, 성공해 어릴 적 동경했던 에어조던 시리즈를 사 모으는 스토리다.

김씨의 에어조던 수집은 취직 이후 본격화됐다. “한 달 동안 수고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의미가 됐습니다. 신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만 봐도 기분 좋은 존재입니다.”

그러다 보니 에어조던은 한 켤레로 충분하지 않다. 김씨도 에어조던 시리즈를 80여 켤레나 보유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모델이 나오면 3켤레를 구입해 1켤레만 신고 나머진 보관하기도 한다. “수집가들 사이에선 80켤레가 절대 많은 양이 아니다”라는 그는 이젠 수집 범위를 넓혀 코비, 에어맥스 등 다른 운동화도 모으고 있다. “수집한 운동화를 보면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마음 놓고 구입하기 어려웠던 운동화들을 품고 있으니깐요.”

대중문화평론가 이봉호씨가 최근 구매한 ‘로보트 태권브이’ 프라모델. 국내 로봇 중 최초로 합금으로 제작됐으며 2,000개 한정으로 출시됐다. 롯데쇼핑 제공
대중문화평론가 이봉호씨가 최근 구매한 ‘로보트 태권브이’ 프라모델. 국내 로봇 중 최초로 합금으로 제작됐으며 2,000개 한정으로 출시됐다. 롯데쇼핑 제공
대중문화평론가 이봉호씨가 최근 구매한 ‘로보트 태권브이’ 프라모델. 국내 로봇 중 최초로 합금으로 제작됐으며 2,000개 한정으로 출시됐다. 롯데쇼핑 제공
대중문화평론가 이봉호씨가 최근 구매한 ‘로보트 태권브이’ 프라모델. 국내 로봇 중 최초로 합금으로 제작됐으며 2,000개 한정으로 출시됐다. 롯데쇼핑 제공

◇어린 시절의 희망, 태권브이 수집하는 대중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 이봉호(51)씨에게 추억을 소환하는 물건은 조립식 모형 장난감인 프라모델이다. 그 중 이씨가 주로 수집하는 모델은 로봇이다. 한 때는 100개가 넘기도 했다.

어릴 적 그에게 로봇은 위기의 주인공을 구하고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였다. 로봇 하나면 다른 장난감은 필요치 않았다. 이씨는 그래서 자신의 청소년기 이후에 나온 건담, 에반게리온 등은 구입하지 않는다. 그는 “미래를 꿈꾸며 재미난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만화 속 등장인물만 품에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에도 1976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 프라모델을 구매했다. 이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합금을 사용한 완성도 높은 제품이어서 더욱 끌렸다”며 “태권브이가 활약하던 시절을 회상할 수 있어 출시하자마자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태권브이는 대중문화까지 가혹하게 검열했던 유신시대와 맞서 싸운 씩씩한 친구이자 일본 문화의 대항마이기도 하다. “일본만화 마징가Z, 철인28호 등이 인기를 누리던 당시 이단옆차기를 하며 등장한 태권브이는 한국을 상징하는 당당한 로봇이었습니다. 그리고 군사정권과 맞서서 민주주의를 되찾는 학창시절을 보내다 보니, 태권브이에는 민주화 상징이라는 이미지까지 드리우게 됐습니다.”

하창우씨가 최근 복원에 성공한 2005년식 볼보 S60R. 완벽한 복원으로 새 차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창우씨 제공
하창우씨가 최근 복원에 성공한 2005년식 볼보 S60R. 완벽한 복원으로 새 차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창우씨 제공
프로 야구선수 출신인 하창우씨가 3년간 복원한 볼보 S70R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98년 전복사고에서 하씨를 구해준 차와 같은 모델이다. 하창우씨 제공
프로 야구선수 출신인 하창우씨가 3년간 복원한 볼보 S70R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98년 전복사고에서 하씨를 구해준 차와 같은 모델이다. 하창우씨 제공
프로 야구선수 출신인 하창우씨가 3년간 복원한 볼보 S70R 앞에서 아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98년 전복사고에서 하씨를 구해준 차와 같은 모델이다. 하창우씨 제공
프로 야구선수 출신인 하창우씨가 3년간 복원한 볼보 S70R 앞에서 아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98년 전복사고에서 하씨를 구해준 차와 같은 모델이다. 하창우씨 제공
전직 프로야구 선수 하창우씨가 직접 중고차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10여대를 복원하다 보니 이젠 노하우가 쌓여, 웬만한 정비는 스스로 할 수 있게 됐다. 하창우씨 제공
전직 프로야구 선수 하창우씨가 직접 중고차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10여대를 복원하다 보니 이젠 노하우가 쌓여, 웬만한 정비는 스스로 할 수 있게 됐다. 하창우씨 제공

◇중고차 복원으로 제2인생 사는 전직 야구선수

프로야구 선수 출신 하창우(49)씨는 레트로가 제2인생을 꾸리는 원동력이 됐다. 하씨는 1994년 은퇴 후 섬유ㆍ의류ㆍ무역회사 등을 거쳐 지금은 야구용품 제작ㆍ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그간 쉴 틈 없이 달려온 그는 최근 중고차를 새 차처럼 복원했다. 울산까지 가서 직접 구매해온 2005년 볼보자동차 S60R로, 15만㎞를 뛴 차다. 차체만 그대로 뒀을 뿐, 부품 대다수를 바꿨다. 엔진도 일본에서 5만여㎞ 주행한 중고품을 수입해 들여와 교체했다. 하씨는 “단종된 차여서 부품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구해온 부품을 조립해 길 들이기 작업까지 마치니 2년이 후딱 지나버렸다”고 말했다.

그가 이 차에 공을 들인 이유는 역시 추억 때문이다. 하씨는 1998년 볼보 S70R을 구입한 지 보름 만에 운전 미숙으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겪었다. 당시 차량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찌그러졌지만 하씨는 무사히 차 문을 열고 빠져 나왔다. 볼보는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 됐다.

다시 생업에 매달려 살던 하씨는 2011년 우연히 길에서 볼보를 보고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는 가족을 보호해 줄 볼보를 선물로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씨는 당장 볼보 매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가 타던 5기통 2.5ℓ 터보엔진은 사라지고 첨단 전자장치로 가득한 차량만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차량 복원과의 긴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사고로 폐차했던 모델과 같은 제품을 수소문 끝에 구입해와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받은 끝에 3년 만에 복원을 마쳤다. 엔진만 5번을 바꿨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웬만한 정비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기술까지 익히게 됐다.

주변에 소문이 나, 지인들의 복원 요구도 쇄도했다. 그간 그가 복원한 차만 10여대에 달한다. 최근 복원한 S60R도 대다수 부품을 교환한 힘든 작업이었다. 복원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복고 자동차 부품을 수입하기도 하고, 국내 중소업체에서 생산한 부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일도 시작하게 됐다. 그는 “복원한 차가 볼보를 제작한 스웨덴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유명 튜닝 업체 제품을 도맡아 판매하는 한국총판 자격까지 얻게 됐다”고 말했다.

하씨는 복원을 마쳤을 때 성취감을 잊을 수가 없다. “복원이 다 됐다고 생각하면 시동이 꺼지기도 하고, 엔진이 버티지 못해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습니다. 복원은 부품 하나하나가 자리 잡도록 시간을 갖고 애정을 기울이는 작업입니다. 최근 제품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성인 거죠. 그게 복원의 매력일 겁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복원해가며 사는 게 인생이기도 하고요.”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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