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자신이 대표인 정당 내부행사에서 한 말이지만 한 나라의 여당 대표의 역사인식 수준이 이 정도라면 정말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어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민주당 행사에서 “복지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또 “20년 아니라 더 오랜 기간 (집권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를 잘해서 100년을 간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 말은 논평 가치도 없는 발언이니 본론으로 넘어가자.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역사적 정당성을 밝힌다는 차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조대왕이 돌아가신 1800년부터 지금까지 218년 중 국민의 정부(김대중 전 대통령) 5년, 참여정부(노무현 전 대통령) 5년 외에는 한 번도 민주, 개혁적인 정치세력이 나라를 이끌어가지 못했다.”
한때 서점 주인까지 하고 총리도 지낸 이 대표는 도대체 누구의 무슨 책을 읽었길래 뜬금 없이 정조를 끌어들여 이런 우활(迂闊)한 소리를 했을까? 참고로 우활은 정조가 자주 쓰던 용어다. 그저 4차원 아니, 1차원적 독서수준이 빚어낸 해프닝으로 보기엔 곤란한 점이 있다.
필자는 이미 ‘정조실록’을 수 차례 숙독하고서 ‘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라는 책을 낸 바 있다. 그 때는 노무현 정권 말기였는데 몇몇 서평 중에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려고 정조를 비판적으로 썼다”고 지적하는 것들이 있었다. 한참 후에야 당시 노무현 정부와 가까운 사람들이 스스로 당시 노 대통령을 정조에 비기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선 실소를 머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명천지 민주세상에 대통령을 비판하려면 신문 칼럼이면 충분할 것을, 내가 무슨 할 일이 없어 몇 년씩 고생하며 실록을 다 읽고 정조평전을 써서 대통령을 비판하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일부에서는 명나라에 대해 상대적 거리를 두려 했던 광해군을 높이 평가하며 “반미면 어떤가?”라고 했던 당시 노 대통령을 광해군과 연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광해군일기’라도 좀 읽어보고 이런 말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광해군은 굳이 말하면 권력과 군사력을 다 쥐고서도 오합지졸 1500명 정도를 이끈 서인세력에게 내쫓겨났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닮았다고 해야 그나마 실상에 가깝다.
역사를 끌어들이려면 충분히 공부하고서 현재와 비교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흔히 호학(好學)군주라고 하면 세종과 정조를 든다. 그러나 호학(好學)의 본래 의미를 안다면 세종은 여기에 해당되지만 정조는 그렇지 못하다. 공자는 호학(好學)의 의미를 “불치하문(不恥下問)”, 즉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라고 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호학(好學)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호학(好學)은 묻기를 좋아하는 호문(好問)에 가깝고 결국 이 말은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조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군사(君師)라고 불렀다. 스스로 임금이자 스승이라고 불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접했을 때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와! 얼마나 뛰어났으면 스스로 스승이라고 했을까?”와 “얼마나 교만하면 그 많은 뛰어난 신하들을 무시하고서 임금이 스승을 자처하고 나섰을까?” 전자는 어린아이같은 역사인식이고 후자는 비판적인 역사인식이다. 필자는 후자다. 스스로 스승을 자처하는 임금이 신하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정조 시대의 실패는 신하들보다는 정조 자신이 자초한 측면이 훨씬 크다. 이 점은 정조실록을 정독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군주가 자기 손으로 권력을 외척에 넘겨준 임금이 바로 정조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암군(暗君)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런 정조를 218년 만에 잇겠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하긴 독선(獨善)이라는 점에서는 정조와 이 대표가 닮았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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