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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통신구 화재에 난리 난 일상… ‘IT 한국’ 블랙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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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통신구 화재에 난리 난 일상… ‘IT 한국’ 블랙아웃

입력
2018.11.25 18:43
수정
2018.11.25 23:4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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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등 통신ㆍ카드결제 먹통… KT “26일까지 통신 시스템 복구”

아현지사 백업망 없어 복구 지연, 민간 통신망도 국가기반시설급 관리를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에서 KT 관계자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 복구에 매진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에서 KT 관계자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 복구에 매진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24일 오전 발생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서울 서대문구 용산구 마포구 중구 은평구 등 서북부 5개 구와 고양시 일부 지역에서 수십만명에서 수백만명이 이틀 넘게 큰 불편을 겪었다. 일상이 정보통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상황에서 핵심 기반시설인 통신 안전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돼 왔는지 속속 밝혀지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곳에는 전화선 16만8,000회선, 광케이블 220조(전선 세트 단위)가 집중돼 있는데도 방화설비는 소화기 1대만 비치돼 있었다. 연소방지설비인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현행 소방법은 전력ㆍ통신사업용 지하구가 500m 이상인 경우에만 연소방지설비와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아현지사 지하구는 길이가 150m 정도라 필수 설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KT 네트워크부문장 오성목 사장은 “소방법 규정에 따라 시설을 운용했고, 이번 통신구는 소방설비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면서 “대신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화재 감지 시스템을 설치해 불이 나자 바로 신고할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KT는 이번 화재로 피해가 발생한 통신 시스템을 26일까지 모두 복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재 이틀이 지나도록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5G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던 ‘통신 강국’의 허술한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통신 서비스 범위가 상업을 넘어 의료, 금융, 보안 등 일상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통신사의 통신망도 국가기반시설에 준하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화재는 24일 오전 11시 12분쯤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로 KT 아현지사 지하 1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된 뒤 6m 깊이에 위치한 통신구 79m 가량을 태우고 10시간 뒤인 오후 9시 26분 완전히 진화됐다. 그러나 화재로 시작된 통신 두절 사태는 일부 지역에서 25일 밤까지 이어졌다. 아현지사에는 화재 발생 시 문제가 된 통신망을 대체할 수 있는 백업체계가 없어 피해 복구가 늦어졌다. 오 사장은 “전국망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정부에서는 통신지사를 A~D등급으로 나누는데,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 일대를 담당하는 아현지사는 D등급이라 A~C등급과 달리 이중으로 망을 깔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창규 KT 회장이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하고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 등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창규 KT 회장이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하고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 등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D등급 지사로 분류되는 곳은 KT 300여 곳을 비롯해 전국에 800~900곳 정도다. 이번처럼 백업망이 마련돼 있지 않은 D등급 지사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해당 지역은 속수무책으로 ‘IT 블랙아웃’을 겪어야 할 판이다. 심지어 A~C등급 지사의 경우에도 이중망 개설은 법에 규정된 의무사항은 아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강제는 아니지만 부처에서 중요 지사의 경우 백업망을 깔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결제부터 자율주행까지 모든 것이 통신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 만큼 고객에게 직접 닿는 서비스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면서 “전 통신지사 이중망 구축이 힘들다면 사고 발생 시 다른 사업자의 우회로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책 마련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4년 3월 서울 종로5가 통신구에서 화재가 나 서울시내와 수도권 일대에 무더기 통신두절 사태가 빚어졌고, 같은 해 11월에는 대구 지하통신구 불이 났고, 2000년 2월에는 서울 여의도 전기ㆍ통신 공동구 화재로 사흘간 통신장애가 이어졌다. 그 때마다 각종 대책이 쏟아졌지만, 정부 차원의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또 한번 후진적 화재를 불러온 것이다.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 화재 현장에서 통신 핵심 설비인 광케이블 교체작업이 한창이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 화재 현장에서 통신 핵심 설비인 광케이블 교체작업이 한창이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KT 등 통신망 사업자들이 안전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력이나 통신 설비에서는 감전 위험 때문에 물을 사용해서 불을 끄면 안 된다”면서 “이런 곳은 스프링클러가 아닌 가스소화설비를 설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소방법도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화재가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통신망 사업자가 최소한의 설비만 했다는 것은 후진적 마인드의 경영”이라며 “면적ㆍ규모 상관없이 통신구에 자동소화설비를 의무화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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