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신청자 보호 현행법과 충돌
공간ㆍ식량 등 예산 문제도 얽혀
멕시코 정부 협조 여부도 혼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민자들을 원천 봉쇄하는 정책을 추가로 단행할 예정이다. 중남미 이민자(카라반)들이 망명 심사 기간에도 미국 땅에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멕시코에 머물게 하는 방안이다. 이에 따라 멕시코는 ‘카라반 대기실’ 신세가 될 처지에 놓였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 행정부가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이민자의 망명 신청 심사 기간 미국이 아닌 멕시코에서 대기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차기 멕시코 정권과 합의 했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미국 법원에서 망명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 이들은 절대로 미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된다.
미국 정부는 망명 신청을 방패 삼아 불법 이민자들의 미국 체류를 원천 불허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현행법은 일단 누구나 망명 신청을 할 수 있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망명 심사 대기 기간이 수년으로 길어지면서 불법 이민자의 미국 체류를 사실상 용인해주는 ‘루프홀(Loophole, 법률상 허술한 구멍)’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미국 땅을 밟을 수 있는 카라반은 극소수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망명 신청을 한 중남미 이민자 출신의 단 10%만이 자격 심사를 통과하는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카라반 행렬의 추가 유입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실행 여부는 미지수다. 당장 법적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의 리 겔런트 변호사는 망명 신청자들을 보호하는 현행법과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망명 희망자들의 발을 멕시코에 묶어두는 것은 그들을 위험에 처하도록 방치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에서 공정하고 합법적인 망명 절차를 제공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정부의 협조도 관건이다. WP는 12월 취임 예정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멕시코 정부가 이번 방안에 합의했다고 전했지만, 보도가 나온 뒤 멕시코 정부는 이를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예산 문제도 깔려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당장 수만 명에 달하는 중남미 이민자들을 수용할 공간과 이들에게 지급할 기초식량과 의복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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