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구 79m 소실… 26일 국과수 합류 2차 정밀 합동감식
국가 재난에 버금갈 정도로 일상이 올 스톱(All Stop) 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원인은 사고 이틀째에도 오리무중이다. 관련 정보가 빈약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차 합동감식에서 통신실 전기문제 정도를 원인으로 추정했을 뿐이다.
경찰과 소방, KT, 한국전력 등 4개 기관은 25일 오전 10시30분부터 4시간가량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로 KT 아현지사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했다. 불은 전날 오전 11시12분 신고 접수 뒤 10시간 남짓 통신구 79m를 태우고 오후 9시26분 완전히 꺼졌다. 통신구가 지하 6m 아래에 있는데다, 전체가 연기로 꽉 차면서 진화에 애를 먹었다. 통신구는 인터넷 등 통신망이 지나가는 구형 형태로 높이는 2.3m, 폭은 2m 정도다.
이날 조사로 아현지사 건물 지하 1층 통신구부터 서부역에서 신촌기차역 방향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통신구 79m가량이 소실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서대문 마포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등 서울 서북지역이 특히 피해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확한 발화지점은 단정하지 못했다. 불이 소실구역 중간에서 시작돼 양쪽으로 뻗어나갔거나, 어느 한쪽부터 타 들어갔을 수도 있어서다. 다만 건물 3, 4층에 있는 통신실에서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구리선과 통신구 광케이블이 연결되는 부위에서 불이 시작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유력하다는 정도로만 이날 1차 감식 결과를 발표했다.
그 근거로 소방 당국과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광케이블이 지나가는 통로인 통신구 자체에는 송전선이 설치되지 않기 때문에 합선이나 누전 등 전기문제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발화물질이나 원인으로 지목될 환경 등이 통신구엔 조성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통신실은 다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통신구를 작동하기 위해 전원을 공급하는 통신실에서 뻗어 나온 구리선이 접촉 불량 등으로 순간 스파크(전기불꽃)를 발생시킬 수 있고, 이것이 튀면서 불이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1994년 서울 종로5가 통신구 화재는 통신구 통신선이 아니라 인근 배수펌프 스위치 과열이, 2000년 여의도 공동구 화재는 송전선 연결부위 문제로 인한 전기접촉이 화재 원인이었다.
다만 일종의 방화벽 존재 여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됐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확한 감식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통신실에서 화재가 시작됐다면 통신구로의 불길 확산을 차단하는 설비가 제대로 구동됐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KT는 해당 통신구가 언제 매설됐는지, 그간 어떤 식으로 관리가 됐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방화 가능성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수사 여부를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경찰은 26일 오전 10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2차 정밀 합동감식을 실시할 계획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