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6> ‘봉’이 된 발달장애 부모들 
박구원 기자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동환이한테 장애를 없애줄 테니 부모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면 나는 당장 죽을 거야. 자기도 그렇지?”

훅 치고 들어온 남편의 질문이 살벌하다.

“나? 으…응. 나도 그래야지.”

즉각적인 답변이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고, 대략 1초 정도 망설였다고, 남편의 잔소리가 폭풍처럼 이어진다. 이래서 모성은 부성을 따라갈 수 없다는 억울한(?) 누명까지 쓴다.

아들의 지적장애가 없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건 부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뜬금없는 말장난이 이어지는 건 그만큼 발달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아들은 네 살이 넘어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소위 ‘치료’라 부르는 발달재활 서비스는 생후 13개월부터 받기 시작했다. 10kg도 안 되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대학병원 물리치료실에 데려다 놓으면 치료사는 아들의 팔다리를 이리저리 주무르고 당겼다. 그때마다 자지러지게 울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리치료가 끝나면 작업치료 시작. 모든 치료가 끝나면 나는 얼른 아이를 안고 병원 내 수유실로 달려갔다. 눈물 자국 가득한 얼굴로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던 작은 아기는 어느덧 쑥쑥 자라 열 살이 되었다. 지금은 젖 대신 밥과 고기를 먹고 10kg에도 못 미치던 체중은 36kg으로 늘어났지만 아들의 치료실 인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들 인생의 5할은 치료실과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시작으로 언어치료, 심리치료, 놀이치료, 음악치료, 인지치료, 감각통합치료 등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비장애 아이들의 사교육 시장 못지않게 빠르게 변하는 게 발달장애 아이들의 치료 시장이다. 운동 하나만 보더라도 비장애 아이들은 태권도, 합기도, 인라인 스케이트, 수영 등 개별 과목을 수강하는 데 반해 발달장애 아이들은 이러한 과목들 외에 특수체육이란 것이 추가된다. 아이들 개별 발달상황에 맞게 부족한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둔 운동이다. 그런데 특수체육이란 이름만이 아니라 심리운동, 놀이운동, 학과체육 등 다양한 이름으로 과목이 개설돼 있다. 재활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통해 아들의 운동기능을 향상시켰고, 지금은 매일의 산책과 주말 둘레길 걷기로 체력단련을 시키고 있는 난 새롭게 신설된 이런 과목들의 차이점조차 잘 모르는 ‘뒤처진’ 엄마다.

일반적인 치료도 마찬가지. 새로운 치료 접근법이 끊임없이 나오고 그에 따라 유행도 변해간다. 요즘 대세는 행동 중재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ABA프로그램’이다.

나는 아들이 여섯 살 때 ABA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둘이 ABA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당시는 ABA를 하는 곳이 많지 않았고 한 과목 치료를 위해 왕복 2시간을 오갈 자신이 없어 알고도 그냥 넘겼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 사이에선 ABA가 보편화한 느낌이다. 특히 ABA조기교실이라 해서 학교에 취학하기 전 집중치료를 하는 곳이 늘고 있다. 오전 프로그램만 이용할 경우 월 200여만원, 오후까지 풀타임으로 집중치료를 할 경우 매달 400여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엄마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 멀리 지방에서까지 원정을 오기도 한다. 심지어 요즘엔 ABA를 넘어 BCBA이란 것이 새롭게 뜨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거기까진 알아볼 생각도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주변 엄마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특별한 치료’도 많다. 누군가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비싼 한약을 먹는다. 어디가 아파서가 아닌 엄연히 발달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방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고압산소를 마신다. 고압산소 요법 역시 고농축의 산소가 뇌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활성화시킨다며 집에 고압산소 기계를 들여온다. 누구는 기 치료를 받기도 하고, 누구는 특정한 음이온을 뿜어내는 돌로 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누가 이런 치료를 받았는데 그 다음부터 각성이 낮아져 잠을 잘 자더래/”

“누가 여기 치료실을 갔는데 며칠 뒤부터 말을 하기 시작하더래.”

이런 얘기들을 듣고 있으면 아직 말도 못하고 스스로 옷 입는 것조차 서툰 아들이 생각나면서, 아들이 중증의 장애인인 건 모두 내 탓인가 싶다. 나도 고급치료 시키고 특별치료 시키면 아들은 기능 좋은 경증의 장애인이 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이들마다의 개별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치료를 받는다고 같은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과한 치료는 학습된 무기력을 증가시키고 자칫 트라우마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 나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치료실 개수가 아닌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적용 가능하도록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아들이 언어치료실에서 밥 먹을 때의 여러 상황을 배우고 왔으면 나는 그것을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연습을 시켜야 한다. 아들이 작업치료실에서 리본 묶는 걸 배우고 오면 나는 아들이 운동화를 신을 때에도 리본을 묶을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치료실에서 배운 것들을 일상생활에서 적용 가능하도록 확장시키는 게 엄마인 나의 몫인 것이다. 이런 걸 알고 있는 나조차도 때때로 흔들린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중심을 잡고 있다가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가끔은 나풀나풀 흔들리곤 한다.

문제는 부모들의 절실함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발달재활 서비스라는 이 시장은, 절실함 때문에 부모들이 기꺼이 자식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시장이다. 그러다 보니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여기저기 자폐도 완치될 수 있다는 문구가 심심찮게 보인다. 완치된 사례도 소개한다. 혹시나 하면서도 엄마들은 ‘완치’라는 말에 기대감이 솟는다. 속는 셈 치고 해보자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말문을 트이게 하기 위해선 단전에 힘이 길러져야 한다며 아이의 배를 주먹으로 때려도 용인하고, 특정한 지시 따르기가 될 때까지 아이를 강제로 제압하더라도 그러라고 허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병원이 아닌 치료실에서 허가되지 않은 ‘의료적인 처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 장애가 ‘완치’될 수 있다면, ‘치료’될 수 있다면… 그러한 생각이 장애 아이에 대한 온갖 비인권적인 ‘실험’을 하도록 허용한다.

발달장애를 완치시킨다니.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인류학적으로 획기적인 일이 될 발달장애 완치의 업적을, 전 세계 가장 똑똑한 천재들이 수십년의 연구를 해도 해내지 못한 일을, 대한민국의 소규모 치료실과 일부 한의원에서 해내고 있다니. 이건 노벨상감 아닌가. 아니 인류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가장 위대한 업적일 테다.

에휴~. 한숨이 팍팍 나오는 이런 사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건 발달재활 시장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의료기사의 자격증을 갖춘 건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1급뿐이며 그 외 나머지 치료사 자격증은 민간에서 취득한다. 각 민간단체와 협회마다 자격증을 주는 기준도 제각각이다. 전문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심지어 사이버대학에서 40시간 수강을 하고 시험을 치면 치료사 자격증이 나오는 곳도 있다. “우려를 잘 알고 있지만 관리해야 할 민간단체가 수백여 군데에 이르기에 일일이 손 쓸 수 없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답변이다. 잘못된 재활 치료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부작용이 속출하자 올해 9월부턴 치료사 취득요건을 강화하는 정부 차원의 조치가 취해졌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취득하는 자격증에 대한 관리일 뿐 현재 치료사와 치료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식이 발달장애인이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선 목숨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 목숨도 내놓는데 돈이 대수랴. 발달장애 부모들은 봉이다. 완치를 외치며 현혹한다. 전문적인 용어를 써가며 부모들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검증되지 않고 때론 위험하기까지 한 온갖 방법들이 ‘치료’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건 장애인 당사자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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