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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ㆍ나뭇잎에 IT 접목… ‘고령화 소멸위기’ 이겨낸 일본 시골마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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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ㆍ나뭇잎에 IT 접목… ‘고령화 소멸위기’ 이겨낸 일본 시골마을들

입력
2018.11.25 16:21
수정
2018.11.26 00:1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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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미야마초, 빈집을 사무실ㆍ상점 개조해 IT인재 유치 

 가미카쓰초, 나뭇잎 판매 경제적 자립… 年 억대 수입도 

일본 소멸가능성 도시 조사 결과. 한국일보 그래픽팀
일본 소멸가능성 도시 조사 결과. 한국일보 그래픽팀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 풍경. 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 풍경. 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구절벽의 위기를 경험한 일본에선 2014년 5월 ‘소멸가능성도시’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민간단체 일본창성회의가 실시한 조사로 전국 1,799곳 지방자치단체 중 절반에 육박하는 896곳이 2040년까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인구의 대도시 집중 등으로 20~39세 여성인구 감소율이 50%를 넘는 지역을 의미한 것으로, 이 중 인구 1만명에 못 미치는 523곳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소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놨다. 일본 정부에선 같은 해 9월 내각에 총리 직속 지방창생본부를 설치하는 등 지방소멸 방지는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소멸가능성이 높다는 평가에도 발상의 전환으로 고령화ㆍ과소화를 극복해 나가는 산골 마을이 있다. 일본의 주요 4개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四國)섬 도쿠시마(德島)현의 가미야마초(神山町)와 가미카쓰초(上勝町). 지난 19~20일 방문한 두 마을에선 쓸모가 없어 보였던 빈집과 나뭇잎을 정보기술(IT) 인프라와 결합해 소멸위기에 처한 공동체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었다.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의 90년된 민가를 개조해 입주한 디지털영상업체 플랫이즈 사무실 전경. 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의 90년된 민가를 개조해 입주한 디지털영상업체 플랫이즈 사무실 전경. 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빈집 활용해 외지의 예술가ㆍ이주민 유인 

20일 도쿠시마시에서 버스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가미야마초. 1955년 인구 2만1,000명의 소도시였으나 현재 5,404명으로 줄어들었고, 이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2,710명(50.1%)에 달하는 전형적인 산촌이다.

이 마을에 젊은 인구가 유입돼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구감소와 이농에 따른 빈집이다. 비영리법인 ‘그린밸리’는 빈집을 활용해 예술가 초청 및 이주자 유치사업을 벌여 왔다. 1999년부터 매년 3~4명의 예술가를 초청해 폐교나 공장터를 창작공간으로 제공하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2007년부터 빈집을 IT업체 사무실과 상점으로 개조해 제공하는 ‘워크 인 레지던스’ 사업을 통해 이주민의 정착을 지원해 왔다.

오미나미 신야(大南信也) 그린밸리 이사는 “일본에선 2008년부터 총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1억2,800만명에 달했던 인구는 2060년이면 8,070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라며 “하물며 가미야마초처럼 작은 마을에서 인구감소를 멈추게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대신 “도시의 젊은 인재를 유치함으로써 고령화된 인구 구성을 변화시키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끌어들여 과거처럼 농업ㆍ임업에만 의존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들겠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를 ‘창조적 인구감소(Creative Depopulation)’라고 정의했다.

인구 유입만을 생각했다면 빈집에 살겠다고 손을 든 모두를 지원해야 하지만, 가미야마초는 발상을 바꿔 마을에 필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선별해 지원하고 있다. 마을에 베이커리나 레스토랑이 필요할 경우 이를 개업할 사람을 지명해 빈집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빈집을 얻기 위한 희망자 200명이 대기할 정도로 호응이 높다.

2011년 NHK 뉴스를 통해 방송된 가미야마초에서 진출한 IT기업 직원이 하천에 발을 담근 채 바위에 앉아 노트북 PC를 통해 도쿄(東京) 본사 직원들과 화상회의를 하는 장면은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오미나미 이사에 따르면 최근 한국, 중국에서 견학하러 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들을 위한 숙박시설 ‘WEEK 가미야마’도 설립됐다.

외국 출신 이주민들도 있다. 다큐멘터리 영상작가로 아일랜드인인 마누스 스위디는 2016년 이 마을에 정착한 이후 올 8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평소 관심이 많던 수제맥주 양조장을 열었다. 그는 2013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통해 가미야마초에서 3개월 동안 지낸 경험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미국인 웹디자이너도 2016년 일본인 아내와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이주해 마을에 정착했다.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에 있는 공유사무실 가이먀아밸리 위성사무실 콤플렉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린밸리 제공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에 있는 공유사무실 가이먀아밸리 위성사무실 콤플렉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린밸리 제공


 광통신망ㆍ텔레워크 확대로 IT기업 유치 

2004년 광통신망 정비사업과 2011년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화로 난시청 문제가 해소된 것은 가미야마초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텔레워크 등 업무 방식의 다양화가 진행되면서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젊은 층이 많이 종사하는 IT업계에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2012년 가미야마초에 입주한 디지털 영상업체 플랫이즈의 스미타 데쓰(隅田徹) 대표이사는 지은 지 90년 된 민가와 방치돼 있던 양조장 건물을 개조해 도쿄 본사와 동등한 위상의 위성사무실과 영상편집실을 열었다. 16명의 직원이 도쿄 본사와 같은 대우를 받고 근무하고 있다. 이 중에는 도쿠시마현 출신도 있어 ‘현지 고용’ 효과도 거두고 있다.

스미타 대표는 “편집영상을 대부분 온라인으로 납품하기 때문에 업무에 불편함이 없다”며 “광통신망도 대도시에 비해 사용자가 적어 인터넷 속도가 더 빠르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도쿄에 있던 거처도 이 곳으로 옮겼다. 그는 “50년 이상 지낸 도쿄에선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도 모를 만큼 인간 관계가 좁았다”며 “이주에 따른 환경 변화는 업무의 창의성은 물론 주민과의 교류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의 사무실 건물과 툇마루는 직원뿐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다과회를 갖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오노 후미오(大野富美雄) 가미야마 부초장은 “초기엔 이주민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 원주민들도 있었다”며 “지자체도 원주민을 대상으로 이주민들의 일터를 견학하는 버스투어를 실시하는 등 인적 교류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교류와 융합이 지속 가능한 공동체 구축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가미야마초에는 플랫이즈를 포함해 16개의 IT업체가 들어섰고, 공유 사무실도 있다. 그린밸리가 입주해 있는 ‘가미야마밸리 위성사무실 콤플렉스’는 옛 봉제공장 건물을 보수해 2013년 공유 사무실로 탈바꿈한 곳이다. 월 7,500~1만5,000엔(약 7만5,000원~15만원)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사무실을 사용하고 개방된 환경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 도쿄 등에서 입주를 문의하는 연락이 많다고 한다. 현재 웹디자인회사 등 15개 회사가 입주해 있다. 이런 노력 덕택에 가미야마초는 2011년 사상 처음으로 전입인구(151명)가 전출인구(139명)보다 앞서는 결실을 맺었다. .

도쿠시마현 가미카쓰초에 거주하는 니시카게 할머니가 나뭇잎 주문량 확인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태블릿 PC를 보여주고 있다. 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도쿠시마현 가미카쓰초에 거주하는 니시카게 할머니가 나뭇잎 주문량 확인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태블릿 PC를 보여주고 있다. 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나뭇잎으로 억대 수입 버는 고령자들 

가미카쓰초는 가미야마초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1955년 6,265명이었던 마을인구는 현재 1,577명으로 줄었고, 이 중 고령자 인구가 52%를 차지한다. 하지만 산 속에서 수확하는 나뭇잎 등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개발ㆍ판매하는 ‘잎사귀 비즈니스’로 마을 주민 약 150가구 300여명이 경제적 자립을 돕고 일할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 취미 삼아 용돈을 벌기도 하지만 연 수입이 1,000만엔(약 1억원)에 달하는 할머니도 있다.

올해 81세인 여성 니시카게 유키오(西蔭幸代)씨는 19일 오전 산중턱에 자리한 집 주변에서 빨간 단풍잎을 따고 있었다. 26년째 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그는 “잎사귀는 예쁘고 가벼운 데다 정년도 없는 일이라서 가능하다면 100세까지 일하려고 한다”고 웃었다. 연 수입을 묻자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면서도 “나뭇잎 출하로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매일 오전 8시 태블릿 PC를 통해 전국의 시장에서 올린 주문내역을 확인한다. 자신이 출하할 수 있는 주문이 있으면 수락 버튼을 터치한 뒤 집 주변에서 딴 나뭇잎을 플라스틱 팩에 정성껏 담아 자동차로 5분 거리의 농협에 출하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감한다.

나뭇잎 판매는 마을의 영농지도원 출신 요코이시 도모지(横石知二)씨가 고안했다. 그는 1986년 출장지였던 오사카의 한 식당에서 음식을 장식한 단풍잎을 보고 좋아하는 손님들을 보고 이 사업을 구상했다. 마침 그 해 가미카쓰초 주민들이 밀감 농사를 망쳐 어려움에 처했는데, 그가 주민 4명과 함께 나뭇잎을 수확해 출하한 것이 시작이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합작해 설립한 주식회사 이로도리(彩) 대표인 그는 “잎사귀 비즈니스에서 하드웨어(잎사귀)가 10%라면 소프트웨어가 90%”라며 “돈이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 이로도리 직원들은 전국 시장을 방문 조사한 결과를 ‘가미카쓰 정보네트워크’라는 시스템에 올려 상품관리를 돕고, 전국의 시장과 농협을 연계해 수요량을 실시간 공유해 과다 출하를 방지하고 있다.

이처럼 생산과 주문과 관련한 정보는 도쿠시마현에 깔린 광통신망을 기반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보화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를 위해 사용방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구축한 소프트웨어는 가마카쓰초의 나뭇잎이 일본 시장 점유율 70~80%를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꼽힌다.

잎사귀 비즈니스의 성공은 시골을 떠난 젊은이들의 귀농도 촉진하고 있다. 요코이시 대표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한 이주자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며 “지난 5년간 이로도리를 다녀간 인턴 중 36명이 지역에 남는 등 효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도쿠시마=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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