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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기적 이타주의자

입력
2018.11.2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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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물건을 사거나 외식을 할 때 또 비즈니스를 핑계로 가족을 두고 나만의 시간을 따로 써야 할 주말마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고 한다. ‘돈 많이 썼다’느니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 따위의 공치사인데 나는 뻔한 농담을 던지는 것이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 눈치다. 철학자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과 헌신으로 가족의 품행에 대한 명령권을 얻으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약속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스폰데레(Spondere)’에서 나왔다는 스폰서는 ‘후원자’나 ‘보증인’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우리 주변에서 더러 볼 수 있는 대가를 원하지 않는 선물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길고양이 보살피기, 자발적 집회참가, 공유경제 등 선행과 나눔을 통해 ‘주는 행복’에 대해 깨닫고 ‘나누는 삶’을 추구한다. 후원자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그 시대의 문화수준이 정해지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나 베토벤도 여러 귀족들로부터 아낌없는 후원을 받아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후원의 형태도 나날이 다양해졌다. 돈이 되는 것만 주목하는 등 상업주의가 숨김없이 드러나기도 했고 때때로 후원자들은 경제적 이익 앞에서 저항할 수 없는 멋진 자본주의를 사기도 한다.

창조적 후원자로서 오타쿠의 등장은 한층 흥미롭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기업들은 충성도가 높고 소비액도 크다는 점에서 오타쿠를 주목해왔다. 한창 흥행몰이 중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더라도 22년차 퀸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밴드 등을 중심으로 줄곧 덕질을 해온 골수팬들이 퀸을 잊고 살았던 아재들은 물론 ‘퀸알못’까지 마니아 문화의 전유물이던 N차관람에 나서게 했다.

오타쿠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콘셉트나 사용법을 시장에 제시하고 실험적인 상품의 스폰서를 자처하며 아무래도 낯선 초기 상품의 전파자 역할을 한다. 기술개발의 악마의 강, 사업화의 죽음의 계곡, 시장개척의 다윈의 바다는 모든 기업들이 넘어서야 하는 ‘가야만 하는 길’이다. 파괴적 혁신 시장에서 건곤일척 승부를 봐야하는 스타트업 기업은 새 기술에 대한 오타쿠의 열광을 거인의 어깨 삼아 딛고 서야 선각 수용자와 전기 다수 수용자 간에 존재하는 죽음의 계곡(chasm)을 건너 사업화에 성공할 수 있다. 최초 고객이었던 혁신 수용자는 스타트업이 주류 시장을 타깃으로 상품화에 성공하면 선택했던 상품을 홀연히 떠난다. 진정 고독한 스폰서의 뒷모습이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본보기다.

한 나라의 혁신의 정도는 결국 기업 혁신들의 합이다. 불확실한 혁신은 기업이 감당할 몫이고, 성공의 파이는 키우고 실패 비용은 줄여 기업가정신을 북돋워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공유경제와 창업 플랫폼을 통해 투입과 실패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혁신정책이다. 먼저 성공한 기업인들이 다시 후배 기업인들의 성공을 돕는 이타적 행동이 모두의 생존 가치를 높여주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

내가 구매하는 공연 티켓 한 장이 더 나은 공연을 위한 모래알만큼의 도움이 되고, 그 때 내가 쌈짓돈을 잃으면서도 과감했던 주식투자가 지금의 산업을 일으켰고, 이제는 ‘소유 대신 사용하는 시대다’라는 외침들이 모여 우리나라 산업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게 하는 작은 후원이 된다. 스폰서는 ‘이기적 이타주의자’다. 나를 위해 좋은 물건을 사고 내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환경과 생태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욕구로 승화시키는 사람이다.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이들의 인정 욕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칭찬을 아끼지 말자.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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