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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한국인들 “집은 최후의 안전망… 부동산은 절대 배신 안해” 집착

입력
2018.12.04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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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70세대 내집 욕망, 집값 상승기와 맞물리며 굳어져 

 아파트 수익률 고공행진에 최고의 재산 증식 수단 인식 

1991년 분당시범단지 1차 입주에 앞서 입주예정자들이 이사올 집을 미리 둘러보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1년 분당시범단지 1차 입주에 앞서 입주예정자들이 이사올 집을 미리 둘러보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집은 어머니고 고향이다. 우리는 매일 집을 나서 ‘전쟁터’로 향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3가지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하나인 집은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누이는 곳이다. 그러나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집은 본질적 가치에서 너무 멀어졌다. 집은 이제 누군가에겐 ‘성공의 표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족쇄’일 뿐이다. 어떤 이에게는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고 다른 이에게는 ‘욕망의 대상‘이다. 하룻밤 새 1억원이 오르는 집을 가진 이도 있는 반면 ‘밤새 안녕’을 걱정하며 눈을 붙여야 하는 이들도 적잖다. 두 사람만 모이면 집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싸우다 끝나는 일도 많다. 집이 사회까지 분열시키고 있다. 한국인은 왜 이토록 집에 집착하나.

 ◇6070세대, 내 집 장만은 ‘집안의 경사’ 

중견기업 부장으로 재직하다 몇 해 전 퇴직한 박모(61)씨에게 집은 젊은 날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이자 증인이다. 박씨는 군 장교로 복무 중이던 1982년 지방의 한 단독주택 단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보증금 50만원에 매달 4만원을 내는 월세였다.

그러나 부엌과 화장실을 집주인과 같이 쓰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주인집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벽이 얇아 예민한 아내는 밤잠을 설치기 일수였다. 더운 여름 몸에 찬물이라도 끼얹으려면 집주인 식구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부엌에서 조용조용 ‘도둑 샤워’를 해야 했다. 박씨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늘 집주인한테 주눅이 들곤 했던 때”라며 “혹시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지는 않을까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고 회상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후에도 박씨는 여전히 월셋집과 전셋집을 전전했다. 군 장교 시절보다 월급은 올랐지만 그사이 태어난 2명의 아들을 키우려니 쪼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89년 분당과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아파트 청약 바람이 불 때 아내가 박씨 몰래 들어둔 청약통장을 꺼냈다. 분당 신도시 아파트 청약을 넣자는 것이었다. 빚을 져야 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커가는 애들하고 언제까지 셋집살이만 할 순 없지 않느냐”는 아내의 말에 결심을 굳혔다. 결국 박씨 부부는 분당신도시의 전용면적 72㎡ 아파트를 4,500여만원에 분양 받았다.

“당첨 소식에 아내가 울다 웃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샜어요. 셋집살이 하는 동안 개구쟁이 아들 녀석들 때문에 얼마나 주인집 눈치를 봤겠어요. 대출 빚은 늘겠지만 그래도 내 집이 생긴다는 생각에 얼마나 좋아하던지”

박씨는 분양 당첨 후 친척들과 친구들의 쏟아지는 축하 전화에 전화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우리 둘째가 서울에서 방이 3개나 있는 새집을 샀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셨나 봐요. 서울도 아니고, 방도 3개가 아닌데 말이죠. 셋방만 전전하던 제가 어엿한 내 집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 좋으셨으면 그러셨겠어요.”

91년 아파트에 입주한 박씨는 부모님과 형제, 친척들까지 모두 초대해 거창한 ‘집들이’를 했다. 그야말로 ‘집안 잔치’가 열렸다.

‘소시민’인 박씨 부부에게 ‘집’은 인생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행복을 준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박씨는 “아내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첫 집 장만했을 때를 꼽는다”며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도 첫 집 장만 때가 나 역시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유별난 ‘내 집’ 애착 

한국인들의 ‘내 집’에 대한 애착은 유별나다. 직장인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청약통장에 가입하는 것이다. 지금도 청약통장 가입은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세상살이 설움 중에 집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한국인은 필사적으로 집을 소유하는 데 매달린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의 ‘2017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6만 가구의 조사대상 중 ‘내 집을 꼭 마련해야 한다’는 응답이 82.8%로, 전년(82.0%)에 비해 0.8%포인트 증가했다.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주택보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주택 보유에 대한 한국인의 의지가 강한 것은 80ㆍ90년대 사회복지제도가 거의 없던 시기 베이비부머들이 집을 ‘최후의 안전망’으로 생각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생각이 집값 상승기와 맞물리며 ‘부동산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굳어졌다.

1981년 당시 서울 잠실의 아파트 단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1년 당시 서울 잠실의 아파트 단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특히 한국인은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진다. 아파트가 갖는 생활의 편의성도 있지만 아파트가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아파트와 주택, 주식, 정기예금 등의 수익률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아파트 투자 수익률이 독보적이다. 2007~16년 아파트의 수익률은 59.5%로, 은행 정기예금(41.0%)과 무려 2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주택(54.3%)과 주식(41.3%)의 수익률도 앞질렀다. 아파트의 수익률이 높다 보니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투자를 억제하려 해도 은행예금이나 주식투자보다 훨씬 높은 투자처인 아파트로 투자가 몰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집은 ‘삶의 공간’이 아니라 개발과 투기, 욕망의 대상이 됐다. 국토부 장관까지 나서 “주택공급은 충분하다”고 말할 정도로 집이 넘쳐나도 누군가는 원하는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대출로 집을 산 직장인들은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질까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극소수 부유층을 제외하면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해 줘야 할 집은 오히려 우리 삶의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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