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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삼바 사태와 뒷말 나오는 ‘원칙중심 회계’

입력
2018.11.24 10:00
수정
2018.11.2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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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연합뉴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태를 다룬 기사를 보면 ‘원칙중심 회계’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삼성바이오는 ‘원칙중심 회계기준’을 잘 지켰는데도 증권선물위원회가 고의 분식 판정을 내렸다며 정부 조치를 무효로 되돌리기 위한 행정소송에 나선다고 예고했죠. 이 기사에서 삼성바이오가 실제로 분식을 했는지를 따져보려는 건 아닙니다. 이는 검찰 수사가 끝나면 법원이 판단할 문제니까요. 다만 삼성바이오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가 2011년 도입한 국제회계기준(IFRS)의 핵심인 ‘원칙중심 회계’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집니다. 부실한 정책이 기업의 불확실성을 되레 높이고 있다는 겁니다.

과거만 해도 회계기준은 규정 중심(rule based)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재무제표를 어떻게 작성할지에 대한 규정을 일일이 열거하는 식입니다. 재무제표 작성자로선 헷갈리는 부분은 규정을 찾아 반영하면 돼 수월한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적지 않습니다. 모든 일엔 다양한 변수가 개입되기 마련이고 이때마다 일일이 규정을 찾고 규정이 없을 땐 예외조항을 만들다 보면 회계기준이 너무 복잡해져 실무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 거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게 바로 IFRS의 원칙중심 회계입니다. 우리나라는 회계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2011년 IFRS를 전면 도입했습니다. 2006년 2월 IFRS 도입준비단을 꾸린 것을 감안하면 대략 10년 간의 준비 끝에 IFRS를 들인 겁니다.

원칙중심 회계(Principle based Accounting Standards)는 ‘규정 중심’의 반대입니다. 상세한 규정을 제공하지 않고 회계처리의 큰 원칙만 제시하는 식이죠. 기업이 속한 산업이나 환경이 다양한 만큼 기업 스스로 자사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하는 방식으로 회계를 처리하라는 취지입니다. 기업에 상당한 회계처리 재량을 부여하는 셈이죠.

하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이 방식이 너무 어렵다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왜일까요. 회계처리에 대한 큰 원칙만 제시돼 있다 보니 정작 실무에서 적용할 때 혼란이 생기는 겁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어떤 기업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과거엔 지분율 50%가 기준이었습니다. 다른 거 볼 것 없이 지분 50%가 넘으면 해당 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있다고 보고 연결재무제표에 반영하는 식이죠. 하지만 원칙중심 회계에선 ‘연결시 지배력은 경제활동에서 효익을 얻기 위해 재무정책과 영업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돼 있습니다. 해석의 여지가 생기죠.

이렇게 원칙만 제시돼 있어 회계 현장에선 적지 않은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데, 정작 복잡한 회계처리에 대해 기업이 회계기준원 등에 질의하면 회신이나 지침을 얻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23일 한국회계학회가 개최한 ‘원칙중심 회계기준 토론회’에선 이 같은 제도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의 회계처리 적용사례를 기준원, 금감원에서 일부 제공하고 있지만 충분치 않다”며 “회사와 감사인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감리당국이 특정사안에 대해 강력한 규제 동기를 갖게 될 경우 사후적 결과를 중심으로 원칙중심 회계기준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이미 처리가 끝난 회계장부를 들추며 원칙에 반한다며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회계제도가 사후 적발 위주의 규제로 설계돼 있습니다. 원칙중심 회계는 기업에 상당히 재량권을 부여하는 방식인데, 정작 지금의 제도 아래에선 기업이 회계처리를 제대로 했는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두산 재무제표 작성 담당자는 이런 업무상의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그가 한 말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재무제표 작성자로선 원칙중심 회계 기준을 따르는 게 너무 어렵다. 구체적 지침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판단을 구할 수 있는 근거는 회계기준서인데 번역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참고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역량 있는 회사라면 매뉴얼을 구하겠지만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런 회사는 많이 않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질의회신은 공개도 되지 않는다. 결국 결론을 못 내리면 대형 회계법인 4곳 정도에 자문을 구하는데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작성자만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최근 삼성바이오가 고의 분식을 저질렀다는 증선위 결과가 나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업계에선 감독당국이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고 IFRS를 도입하면서 되레 기업회계의 불확실성을 높였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제도상의 미비점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제2,3의 삼성바이오 사태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날 참석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습니다. 회계기준이란 것도 기업을 제재하려고 있는 게 아니라 법을 어기지 않는 사전예방 가이드라인 성격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IFRS 체계에서 감독의 목적이 기업을 처벌하는 것인지, 아니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과연 금융당국은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날 행사에 참여한 금융당국 관계자도 이런 업계의 지적을 공감한다며 제도 개선점을 찾겠다고 약속했는데, 얼마나 빨리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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