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선박 배기가스 규제로 글로벌 항공 업계가 제대로 유탄을 맞을 위기다. 해운업계들이 친환경 디젤 연료로 갈아타면, 항공용 제트 연료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기 때문이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선박 해운 회사들이 강화되는 배기가스 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내년부터 기존 선박 연료를 디젤로 전환하는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는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부터 전 세계 모든 선박 배기가스의 황산화물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줄이라고 강제한 데 따른 것이다. 황산화물은 산성비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환경 오염 물질로 꼽힌다.
문제는 해운업계의 친환경 정책 변경이 항공 업계에는 연료 비용 폭탄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점이다. WSJ에 따르면 정유업계에서 생산하는 연료는 크게 가솔린, 선박 연료, 디젤과 제트 연료를 포함하는 정제유로 나뉜다. 선박 해운회사들이 기존의 선박 연료 대신 디젤 연료를 사용하게 되면 정제유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더 늘어 나게 되고 자연스레 가격도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트 연료와 디젤 연료는 가격이 서로 연동되는 구조다.
항공업계는 내년 자칫 유가와 관련해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델타 항공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폴 제이콥슨은 “원유가 상승에 더해 선박 업계의 연료 전환이 항공사들에겐 대형 악재”라고 말했다.
반면 정유업계는 표정 관리에 들어간 모습이다. 이탈리아 정유회사인 사라스는 이미 설비 시설의 최대치를 가동하고 있어 가격 인상 없이는 정제유 생산을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 에너지부는 9월 한 달 기준 미국 정유 업계의 공장 가동율이 95%에 달한다고 밝혔다.
결국 항공업계에선 수익성이 악화한다면 비행기 요금을 추가 인상하는 것 이외에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에 따르면 항공 운임 비용을 결정하는 제트 연료 가격은 지난 10월 현재 연초 대비 40% 상승했다. 이에 따라 항공요금도 미국 국내선의 경우 연초 457달러에서 지난 8월에는 485달러로 상승했다. S&P글로벌플래츠의 크리스 미글리는 “선박 배기가스 규제는 결국 정유사 공장에게만 좋은 일로,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선박업계가 연료 종류는 그대로 놔둔 채 배기가스 정화장치(스크러버)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장 우리나라의 SK해운 등이 이 같은 방안을 채택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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