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유출된 우리나라 문화재는 16만여 점. 그 중 일본에 있는 문화재는 40%인 7만여 점이 넘는다. 박물관, 미술관 등의 공식 통계자료만 취합한 것으로 개인 소장 문화재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그러나 그다지 뜨겁지 않다.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산하 전승 작가 모임인 ‘나우회’가 일본 유출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나섰다. 다음달 12일까지 강원 평창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다음달 14~20일 서울 종로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일본 유출 문화재 재현전’을 연다. 일본 동경박물관이 소장한 가릉빈가, 동경예술대학 박물관 소장 석불좌상 등 작가 8명이 만든 재현 작품 11점을 선보인다.
대표작은 경북무형문화재 제37호 대목장 김범식 작가의 ‘벽제관 육각정’. 사적 제144호로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강제 반출돼 현재 야마구치현에 있다. 김 작가는 육송으로 벽제관 육각정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해 재현했다. 굴도리 양식과 육모 지붕까지 실제 모양을 그대로 본떴다. 김 작가는 “건축물이 유출된 사례는 드물어 이를 알리고 싶었다”며 “건축물은 실측하기 어려워 도록과 사진 자료를 주로 참고해 만드는 데 6개월 정도 걸렸다”고 설명했다.
원작에 작가만의 해석을 가미해 새롭게 구현한 작품도 있다. 경기무형문화재 목조각장 제49호 한봉석 작가는 인두조신의 상상의 새 ‘가릉빈가’를 향나무로 조각했다. 한 작가는 “원래 연꽃에 앉아있는 형상이었으나, 재현할 때는 지구를 뜻하는 반원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원 작품엔 없던 날개도 추가한 덕분에 극락정토의 황홀한 정취가 더해졌다.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작가들은 사비를 들여 올 3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오쿠라 컬렉션’을 답사했다. 오쿠라 컬렉션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부를 쌓은 사업가 오쿠라 다케노스가 도굴·수집해 일본으로 가져간 유물 1,000여점이다. 그의 아들이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으나, 불법 반출됐다는 증거가 분명하지 않아 환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가들은 이 한 번의 기회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1, 2시간 동안 신속하게 조각,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유물을 촬영하고 스케치하고 실측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엔 전문가 자문을 듣고 전시할 작품을 선정해 구상안을 세웠다. 추가 자료는 문화재청에서 지원받았다.
매번 수월하게 답사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문전박대를 당해 문화재를 구경하지도 못하거나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보고 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한 탓이다. 한 작가는 “10년 전부터 인연이 된 교토 고려미술관 외에는 좋은 작품이 있어도 못 볼 때가 많다”며 “협조가 안 될 때는 눈으로만 보고 온 후 도록과 사진 자료에만 의지해 재현한다”고 전했다.
재현 작품에 관한 이해도가 낮은 현실도 한계로 꼽힌다. 한 작가는 “재현작에 관한 편견 탓인지 대중의 관심이 낮다”며 “국민에게 우리 문화재를 볼 권리를 선사하고 문화재 환수의 마중물이 되고자 하는 의무감으로 활동한다”고 말했다.
최선숙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사무국장은 “환수 문제를 떠나 문화재가 잘 보존되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문화재를 귀하게 여기면 그 마음을 해외에서도 알아줄 것”이라고 했다.
나우회는 2014년부터 일본, 미국, 프랑스 등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재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엔 그간 제작한 해외 유출 문화재를 한 자리에 모으는 기념 전시회를 여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한 작가는 “전국 각지에 있는 작가들의 재현 작품을 모아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이는 대형 전시회를 기획하려 한다”며 “옛 것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꾸준히 재현전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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