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타임 놓쳐 사망 잇따라… “아이 정맥주사 못 놓아” 발 동동
성인 진단ㆍ처치와 다르고 위험해 병원들 기피
#. 지난해 6월 인천 서구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A(2)양이 장난감을 삼켜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8일 만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119 구급대는 어린이집에서 4㎞ 정도 떨어진 병원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해당 병원에서 ‘소아 응급 전문의가 없고 영유아용 내시경 장비도 없다’며 내원을 꺼렸기 때문이다. 구급대는 결국 병원 안내에 따라 어린이집에서 11㎞ 넘게 떨어진 다른 병원으로 A양을 옮겨야만 했고, A양은 ‘골든 타임’을 놓쳤다.
#. 지난 2013년 의사 3명의 잇단 오진으로 사망한 B(8)군. 그는 맨 처음 S의료원 응급실을 찾아 변비 진단을 받은 날부터 11일이 지난 후 대학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를 찾고서야 급성 충수돌기염, 긴장성 기흉 및 혈흉 증세를 확인했다. 지난달 2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S의료원 의사 3명에게 금고 1년~1년6개월을 선고했다. “횡격막 탈장 진단을 지연해 환자를 사망케 했다”는 취지다.
소아 응급 환자에 대한 사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들을 전문으로 다루는 응급센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아 환자는 원인 진단부터 장ㆍ단기 예후가 성인과 달라 적절한 처치 시기를 놓치면 더욱 위험하므로 특수 인력과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성인 환자와 분리해 소아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전국 소아전문응급센터는 9곳으로, 전체 응급실의 3.7% 수준이다.
소아전문응급센터 부족으로 인해 급한대로 일반 응급실을 찾았다가 발만 동동 구른 경험을 한 부모들이 적지 않다.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급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돼 계속 대기하는 경우도 있고, 전문 인력이나 시설이 없어 치료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탓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응급실에 가도 어린아이의 정맥 주사를 놓을 전문가가 없어 고통스러웠다’ ‘아이가 고열이 나 응급실에 갔더니 대기 인원만 20명이었다’며 대형 병원에 소아 응급실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의료 현장에서는 소아 응급 환자 기피 현상이 더 커지고 있다. 응급센터 평가 기준 상 경증 환자 비율이 커지면 불리한 구조인데 소아 환자 중에는 경증이 많고, 자칫 극성인 부모들로 인해 골치를 앓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서울의 한 권역응급센터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한 병원 안에서도 소아 환자를 두고 응급의학과가 맡느니, 소아과가 맡느니 다툼을 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실제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6월 복지부에 제출한 ‘응급의료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에서 “소아 응급환자가 인턴이나 3년 차 미만 전공의에게 진료 받는 비율이 성인에 비해 높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지난 1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4곳 추가 설치하겠다"고만 발표한 후 세부 계획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소아 응급 환자에 대한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의 구체적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곽영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의학과와 소아과의 인력부족과 병원 운영 구조 상 정부 차원의 명확한 방향성이 정립되지 않으면 소아 응급 환자 소외ㆍ기피 현상은 심화할 것”이라며 “우선 전국에 20개 가량의 소아전문응급실을 꾸려 거점으로 역할하고, 이후 일반 응급실에도 관련 시설 확보 재정 지원을 마련하는 등 세밀한 로드맵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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