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앞에서 영(이렇게) 불러보는 거 처음이우다(처음입니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22일 '4·3 희생자 발굴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린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는 70년 긴 세월 그리워해야만 했던 가족을 마주한 4·3 희생자 유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보고회는 유해 운구, 영상 상영, 신원확인 결과 브리핑, 헌화와 분향, 유가족 유해 상봉, 추도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통한의 세월을 지내온 유족들은 이제야 신원이 확인된 가족의 유해함에 이름표를 붙이고 하얀 국화꽃을 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은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거나, "이제야 와서 미안하다. 보고 싶었다"며 사무치는 그리움에 눈물을 쏟아냈다.
올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총 29구다. 1949년 군법회의 사형수 21명, 1950년 삼면예비검속 희생자 7명, 기타 1명 등이다. 이들 유해는 2007∼2009년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쪽과 동북쪽에서 발굴됐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발굴된 4·3희생자 유해는 올해 제주국제공항 인근 도두동에서 발굴된 4구를 포함해 총 404구다. 이 가운데 올해 29구를 포함해 총 121구의 신원이 유전자 감식을 통해 확인됐다.
2012년까지 기본 STR(보통염색체 또는 성염색체 검사) 방식으로 71명의 신원을 확인했고, 이후 새로운 검사방법인 단일염기다형성검사(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를 통해 추가로 신원이 확인되고 있다.
검사를 수행한 이숭덕 서울대 법의학연구소 교수는 "기존 STR 방식으로는 유해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확인이 매우 어려웠지만, SNP 방식으로 더 많은 신원확인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유해 신원확인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SNP 방식은 STR 방식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예산 지원이 충분히 이뤄져야만 원활한 사업 추진을 할 수 있다. 유해 발굴작업도 남은 과제다. 현재까지 신고된 4·3 행방불명 희생자만도 4천명이 넘는데, 발굴 유해는 404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68년 전 예비검속으로 행방불명됐던 아버지 유해를 찾은 김상호씨는 "꿈을 꾸는 것 같다. 4·3 70주년이 되는 올해 꿈속에서나 그려보던 아버지를 찾아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유해로 돌아오셔서 아쉽다"며 "이번 신원확인을 계기로 좀 더 많은 희생자가 발굴되고, 신원확인도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 밤 꿈속에서 아버지를 한번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를 몰라보실까 걱정도 되지만, 그동안 차디찬 땅속에서 고생 많으셨다고, 이제 편히 쉬시라고 손 한번 꼭 잡아드리고 싶다"며 절절한 마음을 전해 참석자들을 눈물짓게 했다.
오임종 4·3유족회 회장 대행은 "이번에 신원확인이 된 분 중에는 형제가 함께 집단학살돼 한 곳에 묻혀 형 동생을 구분 못 한 경우도 있었다. 한 어르신은 기다리던 남편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유해 발굴과 신원확인은 물론 국회에 계류된 4·3특별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처리해 배·보상 등 최소한의 도리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국방부의 장병 유해 신원확인율이 1%를 조금 넘을 만큼 신원확인이 어려운 과정이지만 4·3희생자 발굴 유해 신원확인율은 33%를 보이고 있다"며 "정부, 제주도와의 협의를 통해 발굴작업과 신원확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부모와 형제를 가슴에 묻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 오신 유족 한 분, 한 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 신원확인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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