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폐지에 서울 사실상 ‘0’… 미투 운동 반발 등 영향
동국대가 재학생 투표를 거쳐 22일 총여학생회(총여)를 없애기로 했다. 이날 결정으로 서울 소재 대학의 총여 숫자는 사실상 ‘0’이 됐다. 민주화 운동과 맞물려 대학가 페미니즘의 선봉 역할을 하던 총여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모양새는 최근 우리 사회 전반의 페미니즘 확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무관심과 경쟁이 물들인 학생자치기구의 퇴조 속에 캠퍼스 내 젠더 갈등 부각 등이 뒤섞인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풀이다.
이날 동국대 학생의결기구인 총대의원회에 따르면 19일부터 사흘간 치러진 학생 총투표 결과, 75.94%(5,343표)가 총여 폐지에 찬성했다. 반대는 22.37%에 그칠 만큼 압도적인 표차였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총여 역할과 정체성 혼란 △학내 갈등 조장과 통합 저해 △남학생들의 학생회비 납부와 투표권 부재 등 710명의 총여 폐지 안건 발의 이유가 대다수에게 먹힌 셈이다. 윤원정 동국대 총여학생회장은 “명백한 민주주의의 후퇴”라며 “절차적 문제가 많아 투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결정은 한 학교에 국한되지 않고, 서울시내 대학 중 유일하게 지도부가 꾸려져 활동하던 총여마저 무너진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올해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서울 소재 대학 3곳의 총여는 잇따라 쇠락의 길을 걸었다. 연세대는 6월 페미니스트 은하선씨를 인권축제 강사로 초빙한 것을 계기로 ‘총여 재개편 요구의 안’이 총투표에서 가결돼 개편 논의에 들어갔고, 성균관대는 지난달 16일 압도적 찬성(83%)으로 총여 폐지를 가결했다.
대학 총여는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최초로 탄생했다. 1980, 90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학내 여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한때 전국에 90개가 넘을 정도였다. 총여는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한총련 여학우 성추행 사건 등을 공론화하고, 학내 반(反)성폭력운동을 전개해 1997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및 개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소수자 대변기구라는 총여의 존재감에 처음 의문이 제기된 건 2009년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추월할 정도로 상아탑 ‘남초 현상’이 사라지면서부터다. 이어 취업난 심화로 학내 자치기구에 대한 무관심이 커지면서 총학생회와 마찬가지로 총여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2013년 이후 건국대 중앙대 서울시립대 홍익대 총여가 잇따라 폐지됐다. 한양대 경희대 등은 회장 후보가 없어 소멸됐다.
일각에서는 미투(#Me Too) 운동, 학내 단톡방 성희롱 규탄 등에 대한 남학생들의 반발(Backlash) 현상이 총여 폐지를 가속화했다는 풀이도 나온다. 혜화역 시위와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 활성화에 일부 남성들이 반발, 온라인을 중심으로 젠더 갈등이 극에 달했던 것처럼 학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자치기구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든 것과, 총학생회에 여학생도 포함되는데 굳이 별도 기구는 필요치 않다는 효율성의 측면 등이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여혐ㆍ남혐 같은 극단적 남녀 갈등 상황에서 남학생들이 총여의 존재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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