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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혁명을 초래한 속임수 저울

입력
2018.11.2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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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니스센터에서 몸무게를 잴 때마다 평소보다 1kg 정도 적게 나온다는 의심이 든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 걸까. 옆 사람에게 물어봐도 집에 있는 체중계보다 좀 적게 나오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쉽게 생각하면 운동효과를 보여 주기 위해 피트니스센터에서 체중계를 기계적으로 조작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반대로 아침은 거의, 점심은 아직 먹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

□ ‘속임수 저울’이 프랑스혁명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혁명 직전 농촌의 혼란과 흉작으로 인해 식량 사정이 급속히 악화했고, 자꾸 작아지는 빵의 크기에 민초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당시 영주 등이 도량형을 악용해 서민들을 속이는 일이 잦았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말은 민초들의 분노에 불을 지른 격이 됐다. 프랑스혁명이 마무리된 뒤 혁명 정부는 거금을 들여 도량형 개량에 나섰다. 개량 추진 세력들은 도량형을 합리적이고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것이어야 하고, 속일 수 없어야 하며, 쉽게 복제해서 전파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이후 적도에서 북극점까지 자오선의 1,000만분의 1의 길이를 1m로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문제는 자오선의 길이를 어떻게 실측하느냐였다. 과학자들은 측량탐사를 나갔다가 스페인 등지에서 간첩으로 몰려 투옥이 되거나 측량기구를 빼앗기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 결국 자오선을 기준으로 표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짓고, 이 수치에 가까운 백금자를 만들어 1m라고 선언했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이 길이의 100분의 1인 1cm를 각 변으로 하는 입방체에 채운 물의 질량을 1g으로 정의했다. 지금 1m는 ‘빛이 진공 상태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거리’다.

□ 도량형 표준은 영원하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프랑스에서 최근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기본단위 7개 중 kg과 A(암페어) 등 4개에 대한 정의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kg은 1889년 이후 백금 90%와 이리듐 10%로 구성된 물체를 원기(原器)로 사용했으나, 이번에는 불변의 물리상수인 플랑크 상수(h)가 기준이 됐다. 다소 어렵기는 하지만, 도량형 기준이 바뀐다는 것은 기초과학과 첨단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고 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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