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쓴 안정희 북 큐레이터
“기록활동가들이 입 모아 하는 말이 있어요.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면 기관에서 보통 이런 반응이 온다고. ‘아니 뭐 굳이 그렇게까지…’ 누군가에겐 시급하지 않게 여겨질지 모르죠. 하지만 저는 생각해요. 기록하지 않으면 삶은 다시 전복될 거라고.”
안정희 북 큐레이터는 소위 업계가 인정하는 아키비스트(archivistㆍ기록활동가, 아카이빙 전문가)다. 법학을 전공한 후 외국계 무역회사에서 일했고, 여러 도서관에서 북 큐레이터로 활동해 온 이력이 문헌학, 기록학과 궤가 다르지만 여러 도서관 및 기업 아카이빙 프로젝트에 참가해 관련 강의 초빙 1순위 강사로 거론된다. 2015년 펴낸 책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이야기나무 발행)에 담긴 시민 아카이빙에 대한 통찰이 현장에서 빛을 발해서다.
경기 성남시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책을 쓴 게 벌써 3년 전인데, 거대담론의 시기를 통과해 개인의 삶이 중요해진 만큼 생애사 집필, 구술사, 마을 역사 복원 등에 대한 관심은 그때보다 더 폭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아카이빙에 관심을 둔 것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각종 사고에 대비해 모든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외국계 무역회사의 업무 방식은 아카이브 그 자체였지만 그땐 몰랐죠. 건강상 이유로 번역과 도서관일 등을 하게 됐고, 사립 공공도서관에서 아카이브에 대해 배우고 관련 일을 해나가며 기록과 기억의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안씨는 당시 도서관 10년사를 정리하다 도서관 측의 설명만 듣고 설립 초기 큰 도움을 준 시민들을 단순 자원봉사자로 분류해 기록하면서 당사자들에 상처를 준 일이 있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고 역사는 권력에 의해 적힌다는 게 이런 의미구나 깨달았어요. 기록에 대해 많이 생각한 계기가 됐죠.”
그는 “수많은 삶을 담은 기록이 있지만, 최종 기록물에는 탈락된 측면이 적지 않고 그로 인해 가슴 아파하는 이들도 있다”라며 “흔히 남겨진 기록물만 가지고 공부하는데 켜켜이 실제 삶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삶이 누락된 기록이라면 잘못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고 덧붙였다.
생활사 기록이나 지역 기록 복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래도 근래 들어 훌륭한 작업이 꽤 많이 쌓여가고 있어요. 해상 기름유출 지역이나, 세월호 참사 현장에 기록활동가들이 일제히 달려가 방대한 작업을 해냈어요. 서울시의 ‘다시 세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록활동가들은 세운상가 상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도 했어요.”
이토록 보통 사람의 기록에 대한 관심이 꽃피는 분위기는, 그만큼 기록하거나 보존하기 좋은 장비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기록 과잉을 경계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많은 개인의 일상이 실시간으로 끝도 없이 올라오는 세상이지만 이를 모두 돌아볼 수 없기에 결국 남는 게 없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며 “무엇을 반드시 남기고, 혹은 잊을 것인지 선택하고 고민하는 작업이 기록활동의 본질”이라고 했다. “어떤 걸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떠올려 보세요. 주어진 날이 오늘 단 하루라면, 뭘 남기고 싶은지. 이걸 분류하고 폐기하다 보면 자신의 가치도, 삶의 이유도 되묻게 됩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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