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청년실업률을 겪은 세대가 나이 들어서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실업 이력현상’이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런 현상엔 해고엔 엄격하면서도 취업 지원엔 인색한 정책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11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 ‘청년실업의 이력현상 분석’(김남주 한은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집필)을 공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21개 주요 회원국을 대상으로 △선진국 청년실업 이력현상의 주요인은 무엇인지 △한국 청년층의 실업 이력현상은 어느 수준인지를 연구한 결과다.
구체적으로 △적극적 노동정책 관련 재정지출 수준 △고용보호 법제화 수준 △노조 조직률 △단체협약 적용 근로자 비중 △임금협상 주체의 상급단체 집중도 △실업급여의 임금 대체율 △최저임금 수준 △조세 격차(고용주 부담 비용과 근로자 임금 차이) 등 노동시장과 관련된 제도나 정책 8가지를 선별해 각각의 요소가 청년실업 이력현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국가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1985~2013년 통계를 활용했다. 청년층 연령대는 높은 대학진학률, 병역 의무 등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해 국제 표준(15~24세)보다 높은 20~29세로 설정했다.
분석 결과 청년실업 이력현상 심화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적극적 노동정책 지출과 고용보호 법제화 수준이었다. 적극적 노동정책은 구직자, 이직자, 장애인 등 취업 지원이 필요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인데, 이러한 정책에 투입하는 재정 규모(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가 21개국 평균 수준인 국가에선 청년실업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이 세대의 30~34세 실업률도 0.083%포인트 높아졌고, 이러한 이력효과는 40대 전반(40~44세)까지 나타났다. 근로자 해고나 임시고용이 얼마나 용이한지를 가르는 고용보호 법제화의 경우 21개국 평균치 수준의 규제를 둔 국가라면 청년실업률 1%포인트 상승을 경험한 청년세대는 30~34세가 됐을 때도 0.049%포인트 높은 실업률을 겪었다. 쉽게 말해 청년기에 실업자 1,000명이 늘어나면 이 가운데 49명은 30~34세 때도 여전히 실업 상태에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적극적 노동정책 지출 수준은 21개국 중 20위, 고용보호 법제화 수준은 6위였다. 노동정책에 투입하는 재정은 꼴찌에 가깝게 적은 반면 고용보호 규제는 평균을 훨씬 웃돌 만큼 강한 셈이다. 정부가 취업 지원에 인색한 탓에 우리나라는 청년실업률이 1%포인트 오를 때 이들 세대의 30~34세 실업률이 0.146%포인트, 35~39세 실업률이 0.035%포인트 늘어나는 강한 이력효과가 나타났다. 청년실업자 1,000명이 늘면 이 가운데 146명은 30대 전반까지, 35명은 30대 내내 일자리를 못 구한다는 얘기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적극적 노동정책 지출 규모는 GDP 대비 0.37%(6조원)으로, 21개국 평균(0.7%)과 비교하면 5조원가량 적은 수준이다. 강한 고용보호 때문에 발생하는 이력효과 또한 청년실업률 1%포인트 상승 시 30~34세 실업률 0.086%포인트 상승으로 평균을 크게 상회했다.
비록 청년실업 이력효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다른 6개 노동시장 관련 요소에서도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노조 조직률(20위) △단체협약 적용률(21위) △임금협상 상급단체 집중도(19위) △5년간 실업급여 대체율(21위)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13개국 중 12위) △조세 격차(20위) 등이다. 일단 정규직 취업에 성공하면 상당히 높은 고용안정성을 누리지만, 구직자나 실직자 처지가 되면 제대로 된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김남주 위원은 “근로자에 대한 해고 등은 엄격하지만 실업 시 임금보전, 취업 지원 등은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며 “이로 인해 기업들은 신규고용을 기피하고 청년들은 고용 보호가 강한 일자리를 얻으려 직업 탐색 기간을 오래 가져가면서 청년실업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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