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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목숨값 4만원

입력
2018.11.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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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가난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삶. 누군가의 삶은 그런 삶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가난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삶. 누군가의 삶은 그런 삶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얼마 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졌다. 방 창문으로 탈출해 살아남은 사람이 여럿이다. 창문이 생과 사를 갈랐다. 고시원엔 창문 없는 방도 많았다. 창문 있는 방의 월세가 창문 없는 방보다 4만원 비쌌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4만원은 평소엔 햇빛이고 바람이었을 거다. 결정적 순간엔 목숨 값이 됐다.

4만원. 치킨 두 마리, 평양냉면 네 그릇, 아이맥스 3D 영화 표 두 장, 서울 도봉구청에서 김포공항 가는 택시비가 그쯤 된다. 고작 그런 돈이다. 마음이 온통 뾰족뾰족할 때마다 나는 경복궁 근처 일식당에 혼자 간다. 4만원짜리 장어 덮밥을 주문해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 한두 달에 한 번쯤 그런 사치를 부려도 나의 세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1년 치 고시원 창문 값이었을 48만원을 미친 척 한 끼 밥값으로 써버린다 해도 나는 무사할 거다.

고시원 희생자들이 4만원이 없어서 죽은 거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그들은 ‘볕 드는 방에 사는 것’과 ‘4만원을 아끼는 것’을 매 순간 저울질하며 살았을 거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가난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삶. 그 무참한 흔적이 검게 불탄 고시원에, 그들의 쓸쓸한 합동 빈소에 있었다.

나의 삶은 왜 그런 삶이 아닌가. 나의 삶은 왜 4만원이 간절한 삶이 아닌가. 운이 좋아서다. 내 부모님은 대학을 졸업한 중산층에 교육열이 높았다. 하늘이 파란 것처럼,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 세계에서 자랐다. 성실하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명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학에 들어갔고, 을보다는 갑에 가깝다는 기자가 됐다. 스스로 노력을 하긴 했지만, 학습 혹은 주입된 노력이었다는 게 정확할 거다. 큰 병 앓은 적 없이 건강한 체질인 것도 유전자의 운 덕분이다. 나를 나로 낳아 키운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내가 애쓴 건 없다. 태어나 보니 당신들의 딸이었다.

운이 모든 걸 결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운과 우연의 힘은 세지고 노력과 실력은 급속도로 힘을 잃어가는 건 맞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죽어가는 말, 촌스러운 말이 됐다. 용은 저 높은 곳에 사는 용들 사이에서만 태어난다. 개천이 고도성장이라는 급류를 타고 큰 바다와 만나던 시절도 저물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에 사람들이 감격한 건, 아무리 용 써도 개천을 벗어날 수 없는 삶이 지긋지긋해서였다.

이 시대의 운은 ‘부모의 재력 혹은 권력’과 같은 말이다. 대학 교수의 딸은 대학 교수가 되고 스타의 아들은 스타가 된다. 누군가 기업을 상속할 때 누군가는 빈곤을 상속한다. 소수가 독점하는 운은 특혜가 되고 결국엔 폭력이 된다. 어떤 젊은이는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로 죽고, 다른 젊은이는 기사가 승용차를 몰아 주는 세상에 사느라 스크린도어를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하필 내 새끼로 태어났느냐. 다음 생엔 부자 부모 만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 나간 산업재해 현장에서, 가난을 죽음으로 물려 준 부모들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했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 천륜을 스스로 부정하고 저주하게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세계는 끝내 평등해지지 않을 거다. 지구상의 운을 한꺼번에 걷어다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 줄 수도 없다. 운의 영향력을 보정하고 교정하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운 덕분에 기뻐하는 사람은 있어도 운 때문에 영원히 좌절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고시원 창문을 ‘희망’의 은유라 부르겠다.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희망. ‘창문 없는 방에서 외롭게 죽을 운명’ 같은 건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노력이 배려이고 도움이고 복지다. 그리고 인간다움이다.

최문선 문화부 차장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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