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 시한 9일 밖에 안 남아… 막판 날림 심사ㆍ나눠먹기 재연될 듯
21일 여야의 극적인 국회정상화 합의로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심사가 재개됐지만 여야 합의시한인 30일까지 고작 9일밖에 남지 않았다. 470조원에 달하는 나라 살림살이 심의까지 정쟁으로 표류시킨 국회는 이제서야 벼락치기 예산 심사에 나서게 됐다. 막판에 여야가 비공개 소위를 만들어 속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밀실에서 혈세를 나눠 갖는 고질병은 또다시 현실화할 조짐이다. 이 같은 악습을 뿌리뽑기 위해선 예산결산위원회 상설화 등 특단의 시스템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예산전이 아닌 정치전 기싸움…점점 꼬이는 예산심사 일정
여야가 이날 예산조정소위원회 구성을 완료함에 따라 본격적인 증·감액 작업이 시작됐지만 당초 국회 예결위가 정해놓은 예산안 심사 일정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예결위는 12일까지 정부부처별 심사를 마치고 15일부터 예산조정소위를 가동, 법정시한(다음달 2일)을 감안해 오는 30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할 방침이었다. 매년 진통을 겪었던 예산안 심사 일정은 올해의 경우 여야가 각 당 위원수를 놓고 대립하면서 일찌감치 틀어졌다. 예산조정소위의 증·감액 심사에는 통상 10일 이상이 필요하지만 올해는 구성이 늦어져 주말을 제외하면 남은 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하다. 여기에 예산안 심의 조차 끝내지 못한 상임위가 6곳에 달한다. 상임위와 예산조정소위의 심사가 당장 22일부터 파행 없이 진행된다고 해도 30일까지 470조원이나 되는 슈퍼예산안을 심사하기에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한데다 여야 쟁점예산도 산적해 일독 수준의 부실 심사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결국 여야가 예산조정 소위 내의 별도 소위인 ‘소소위’를 구성해 초스피드로 예산안 처리에 합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여야는 법정 시한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쟁점 예산 대부분을 속기록이 남지 않는 비공개 간사 회동과 지도부 일괄 협상 테이블로 넘겼다. 예결특위 관계자는 “해마다 예산 심사를 보면 공식 심사 틀인 소위 회의보다 진척 속도가 훨씬 빠른데다 공개 회의에서 절대 안될 것 같던 예산도 소소위에서 살아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매년 이럴 거면 예결위와 상임위가 왜 필요하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예산볼모 정쟁구도 차단…심사기간 확대·기간강제 거론
예산안 졸속 심사 관행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되면서 정치권에서 예산국회를 상설화하거나 예산 심의 시점을 자동으로 못박는 방식으로 예산국회와 정쟁 구도를 분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지지율에 민감한 연말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심의를 마쳐야 하는 현행 예산심사 방식을 개선하지 않고는 당과 의원들의 이해관계를 예산과 연결하는 프레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연말에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는 예산을 무조건 통과시켜야 하는 여당과 예산을 볼모로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켜야 하는 야당이라는 구조를 깰 수가 없다”면서 “미국 등 선진국처럼 연중 예산국회를 운영해 연초에 대부분 예산을 확정하고 상설 예결위를 통해 예산을 상시적으로 검토 조정하는 방식으로 예산국화와 여야의 정쟁을 분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최소한 예산 심사 법정 시한의 한달 전부터는 무조건 예산소위를 가동시키는 강제 규정을 만들거나 소위 구성 방식도 국회법으로 촘촘하게 규정하는 식으로 정쟁화를 막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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