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자동차그룹 르노ㆍ닛산(日産)ㆍ미쓰비시(三菱) 얼라이언스의 카를로스 곤 회장 체포에 따른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 정부는 20일 르노ㆍ닛산 동맹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 곤 회장 체포 이후 제기된 양국ㆍ양사 간 갈등설, 일본 경영진 반란설 등의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곤 회장이 체포 직전 르노ㆍ닛산 합병을 추진 중이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개인 비위를 명분으로 닛산의 일본 경영진이 축출을 시도한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1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곤 회장은 9월19일 요코하마(横浜)의 닛산본사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르노와의 자본관계가 현 상태로 좋은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닛산 측 관계자는 “곤 회장이 파놓은 함정”이라며 “논의를 시작한다는 언질로 단번에 르노와의 경영 통합에 나서려는 생각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곤 회장이 체포되기 전 르노ㆍ닛산 합병을 계획하고 있었다”면서 “닛산 이사회에선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경영 합병을 둘러싸고 곤 회장과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일본측 최고경영자(CEO)와의 갈등이 컸다는 것이다. 이는 경영 통합을 둘러싼 주도권 확보를 위해 닛산 내부에서 곤 회장의 개인 비위 정보를 검찰에 전달한 정황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겉으로는 동등하지만, 사실상 르노가 우위에 선 양사 간 역학관계의 불균형이 경영 통합 여부를 둘러싼 원인으로 지목된다. 르노는 닛산에 43.4%를 출자하고 있고 닛산은 르노에 15%, 미쓰비시에 34%를 출자하고 있다. 프랑스 국내법에 따라 닛산이 가진 르노 지분으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반면, 르노는 닛산에 경영진 임명권 등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 더욱이 프랑스 정부는 15% 지분을 가진 르노의 최대 주주로서 주요 의사 결정에 의견을 제시해 왔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부 장관이던 2015년부터 르노ㆍ닛산의 경영 합병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적 면에선 반대다. 19일 기준 닛산의 시가총액은 4조2,349억엔(약 42조6,000억원)이고 르노는 174억6,500만유로(약 22조4,000억원)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와 곤 회장의 경영 통합 움직임에 대한 닛산 측 일본 경영진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곤 회장의 거취를 둘러싼 프랑스와 일본 측의 대응도 확연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르노는 20일(현지시간) 긴급이사회를 열고 곤 회장을 대신해 티에리 볼로레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임시 CEO, 필리페 라가예트 사외이사를 임시회장으로 선임했다. 이사회에선 곤 회장 해임도 논의됐으나 프랑스 정부가 사법절차 돌입만으로 곤 회장의 해임은 이르다는 의견을 제시해 보류됐다.
닛산과 미쓰비시는 곤 회장 해임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닛산은 22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곤 회장과 그레그 켈리 사장의 해임을 건의할 예정이다. 미쓰비시자동차도 다음주 이사회를 개최하고 곤 회장의 해임을 건의할 계획이다. 이번 사건으로 업계에선 르노와 닛산 간 갈등이 고조될 경우 상황에 따라선 자본 제휴 관계마저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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